시인 허만하(70)씨가 두번째 시집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를 낸 것은 첫 시집 '해조'(1969) 이후 30년 만이었다. 부산을 떠나지 않고 의사로 살아왔던 그의 두번째 시집은 '시인의 귀환'을 알리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한국 문단의 '사건'이었다. 허만하씨가 세번째 시집 '물은 목마름 쪽으로 흐른다'(솔 발행·사진)를 출간했다. 3년 만이다. 이제 그는 잊혀졌다 돌아온 시인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활동하는 시인'으로 꼿꼿하게 몸을 세웠다.허씨의 시 속에서 물이 소리로 전신(轉身)한 것처럼 그는 다시 시인으로 전신했다. '독에 물을 붓는다. 물은 가오리처럼 헤엄치면서 바닥에 엎드린다. 눈부신 허벅지를 휘감고 풍차처럼 돌던 물이 물 속으로 사라지는 순간 물은 번뜩이는 소리가 되어 사방으로 흩어진다.'('물의 그림자' 중 '1.전신轉身'에서)
허만하씨의 시 작업은 관념의 시각화 혹은 시각의 관념화로 모아진다. 시인은 시각 대신 '풍경'이라는 단어를 쓴다. 관념과 풍경을 잇는 것이 시어이다. 이 과정을 두고 그는 시집과 함께 출간한 산문집 '길과 풍경과 시'(솔 발행)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나의 말이 태어나는 장소는 어디일까. 말을 낳는 것은 생각이다. 신은 풍경이라는 시집을 우리에게 선사했다. 우리가 읽는 것은 말의 목적이 아니라 아름다움이다." 허씨가 '시 정신을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매어단 시인'으로 부른 스승 청마 유치환(1908∼1967)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는 지점이다.
그의 시어는 놀랍도록 감각적이다. 비유는 긴장으로 가득 차 있다. 정신은 예리하고 청결하다. 물이 얼어붙는 과정을 옮긴 '얼음'에서는 허씨가 한 편의 시에 모아놓은 팽팽한 시간의 날이 와 닿는다. '몇 군데 보이지 않는 좌표를 잡아 희박한 흰죽처럼 엉기기 시작하는 물은 그 지점에서 서서히 투명성을 잃는다. 진부령 덕장에 흑갈색 몸무게를 걸고 빙산이 흐르는 베링 해협 투명한 쪽빛을 생각하고 있는 동태 각막같이 물은 아주 천천히 흐리기 시작한다. 시린 빛을 안으로 머금은 물은 서서히 흰 대리석같이 결이 고운 경도를 가진다.' 시인의 눈은 단순한 현상을 날카로운 통찰로 바꾸어놓는다. 얼음에서 열기를 발견하는 것이 그렇다. '이 무렵부터 물은 이름을 잃고 상온에서도 김을 뿜는 다른 이름이 된다. 열을 안으로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손바닥이 미끄러운 얼음에 찍찍 들러붙는 것을 보면 얼음의 뜨거움을 알 수 있다.'
시집 '비는 수직으로…'에서 허씨가 보여줬던 수직성은 순간을 면도칼로 떠내는 것 같은 속도감으로 황홀했다. 시인의 수직성은 새 시집에서도 계속된다. 이제 그는 좀 더 오래 기다려 시간을 모으고, 더 높이 또 더 깊이 직선을 긋는다. 시인은 흙 속의 씨앗에서 똑바로 자라난 한 그루의 나무를, 얼음장 아래서 한시도 쉬지 않고 거꾸로 서서 흐르는 물을 본다. '나무는 모천(母川)의 물내를 찾아 아득한 길을 되돌아가는 연어 떼처럼 무덤자리를 찾아 이동하지 않는다. 씨앗이 떨어진 그 자리에서 초록빛 사상(思想)처럼 수직으로 선 자세로 의연하게 낯선 어둠을 맞이할 채비를 하고 있다.'('나무를 위한 에스키스'에서) '물은 낮은 쪽으로 흐르는 비굴이 아니다. 물은 언제나 목마름 쪽으로 흐른다. 거꾸로 서서 흐르는 물은 가혹한 의지(意志)만으로 한 그루 오리나무처럼 비탈에 서 있다.'('육십령재에서 눈을 만나다'에서)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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