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 인류는 사물을 밖에서 관찰하기보다는 사물과 동등한 입장에서 자연 속의 일부가 되어 살았다. 신화속의 괴상한 사물들은 풀과 나무와 느낌을 교환하고 동물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원시인류의 독특한 인식능력의 산물이다.원시인들에게 조류는 도움을 주기도 하고 해를 끼치기도 하고 신성하기도 한 존재였다. 우선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는 조류가 있다. 북쪽의 북효산(北 山)에는 까마귀 같은데 사람의 얼굴을 한 반모(般冒)라는 새가 있었다. 이 새는 밤에는 날아 다니고 낮이면 숨어 있었다. 이 새를 잡아먹으면 더위 먹는 것을 낫게 할 수 있었다. 근처의 양거산(梁渠山)에는 날개가 넷이고 외눈에 개 꼬리를 했으며 까치 울음 소리를 내는 효(□)라는 새가 있는데 이것을 잡아 먹으면 복통을 낫게 하고 설사를 멈추게 할 수 있었다. 서쪽 익망산(翼望山)의 기여(□餘)라는 새는 생김새가 까마귀 같은데 머리는 세 개, 꼬리는 여섯 개로 잘 웃었다. 이 새의 깃털을 차고 있으면 밤에 잘 때 가위에 눌리지 않았다. 역시 서쪽인 고도산(□塗山)에는 생김새는 솔개 같고 사람과 같은 다리를 가진 수사(數斯)라는 새가 있는데 이것을 잡아 먹으면 목에 생긴 혹을 낫게 할 수 있었다. 북쪽 상신산(上申山)에 사는 당호(當扈)라는 새는 생김새가 꿩 같고 묘하게도 턱 밑의 수염털로 날아 다니는데 이 새를 잡아먹으면 눈을 자주 깜빡거리는 습관을 고칠 수 있었다 한다. 이 같은 신화를 보면 당시에도 질병에 대한 인식이 세밀했음을 알 수 있다.
조류는 인간에게 좋지 않은 일들을 막아주는 기능도 지니고 있었다. 남쪽의 청구산(靑丘山)에는 생김새가 비둘기 같은데 마치 누구를 꾸짖는 것 같은 소리를 내는 관관(灌灌)이라는 새가 사는데 이 새의 깃털을 차고 있으면 이상한 것에 홀리지 않았다. 서쪽 소화산(小華山)의 붉은 꿩과 부우산(符 山)의 물총새 같은데 부리가 붉은 민조(民鳥)라는 새는 집에서 잘 기르고 있으면 화재를 예방할 수 있었다. 역시 서쪽인 유차산(□次山)에 있는 탁비(□蜚)라는 새는 올빼미 같은 생김새에 사람의 얼굴과 외다리를 했는데 겨울에는 돌아다니지만 여름에는 숨어 살았다. 이 새의 깃털을 차고 다니면 천둥이 쳐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고 한다.
중원의 휘제산(煇諸山)에 사는 할조(□鳥)라는 새는 꿩 같은데 몸집이 더 크고 온몸이 푸른 빛을 띠었으며 털난 뿔이 있었다. 이 새는 한번 싸우면 죽어서야 그만 둘 정도로 용맹하였다. 그래서 싸움터에 나가는 군인들은 이 새의 깃털을 투구에 꽂아 투지를 북돋웠다.
흉조(凶鳥)도 적지 않았다. 가령 남쪽의 거산(□山)에 사는 주(□)라는 새는 올빼미처럼 생겼고 사람과 같은 손을 갖고 있었다. 이 새는 마치 암메추리와 같은 소리로 제 이름을 불러댔다. 그런데 이 새가 나타나면 그 고을에는 죄를 짓고 귀양을 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근처인 영구산(令丘山)에 사는 옹(□)이라는 새 역시 올빼미 같이 생겼는데 사람의 얼굴을 하고 네 개의 눈에 귀까지 달려있는 괴상한 모습이었다. 이 새가 나타나면 온 세상에 가뭄이 들었다. 서쪽 녹대산(鹿臺山)에 사는 부혜(鳧□)라는 새는 수탉같이 생긴데다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는데 한번 모습을 나타냈다 하면 꼭 전쟁이 일어났다. 지금까지 말한 세 종류의 새는 모두 사람의 모습을 지녔다.
그러나 인면조(人面鳥)의 흉조 이미지는 후세에 가서 사악한 것을 물리치는 길조(吉鳥)로 바뀌게 된다. 고구려 덕흥리(德興里) 고분 벽화에는 만세(萬歲)라는 이름의 인면조가 출현하는데 이 새의 역할은 무덤의 나쁜 기운을 쫓아내고 죽은 자가 편히 쉬도록 해주는 데에 있었다.
서쪽 장아산(章莪山)의 필방(畢方)이라는 새는 학 같이 생기고 외다리에 붉은 무늬, 푸른 몸 바탕에 흰 부리를 하였는데 나타났다 하면 그 고을에 원인모를 불이 일어났다. 서쪽인 숭오산(崇吾山)에 사는 만만(蠻蠻)이라는 새는 물오리 같이 생겼는데 날개와 눈이 하나 뿐이어서 다른 한 놈과 몸을 합쳐야만 날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새가 나타나면 온 세상이 물 바다가 되었다.
만만은 비익조(比翼鳥)라고도 부르며 이 새의 이미지도 후세에는 좋게 바뀐다. 즉 이 새는 두 마리가 꼭 붙어 있어야 날아갈 수 있기 때문에 후세의 문학 작품에서 변치 않는 남녀간의 사랑을 표현할 때에 빈번히 인용되었다. 당(唐) 나라 때의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안록산(安祿山)의 난리로 인해 사랑하던 양귀비(楊貴妃)를 잃은 현종(玄宗) 황제의 애달픈 심정을 '장한가(長恨歌)'라는 시를 통해 천상에서 비익조가 되어 함께 떨어지지 말자는 구절로 대변하고 있다.
동쪽의 진산(□山)에도 결구(□句)라는 불길한 새가 살고 있었다. 이 새는 물오리 같이 생겼고 쥐 꼬리가 있으며 나무를 잘 탔는데 출현하게 되면 그 나라에는 돌림병이 자주 일어났다. 서쪽의 내산(萊山)에 사는 라라(羅羅)라고 하는 새는 사람을 잡아먹었다. 그러나 이 새가 어떤 모습인지 관련된 정보는 없었다. 아마 이름으로 보아 '라라' 라는 소리를 내는 새일 것으로 짐작될 뿐이다.
전쟁 가뭄 물난리 돌림병 식인 등 지금까지 열거한 온갖 재앙보다 더 끔찍한 일을 유발하는 악조(惡鳥)도 있었다. 서쪽 바다 바깥에는 올빼미 같은 생김새에 사람의 얼굴을 한 차조(次鳥)와 첨조(詹鳥)라는 새가 살고 있는데 불행히도 이 새들이 한번 지나간 나라는 그냥 망해버리고 말았다 하니 엄청 무서운 새임을 알 수 있다. 서쪽 먼 변방의 현단산(玄丹山)이라는 곳에도 이와 비슷한 새들이 있었다. 청문(靑□)과 황오(黃敖)라고 부르는 이 새들은 오색 빛깔이고 사람의 얼굴에 머리털까지 나있는데 어느 나라든지 이 새들이 모여들기만 하면 망하였다.
다행히 행복과 평안을 가져다 주는 상서로운 새들도 있었다. 길조의 대표는 말할 것도 없이 봉황(鳳凰)이다. 엄밀히 말하면 봉황새 무리의 수컷을 봉이라 하고 암컷을 황이라 한다. 봉황의 고향은 중국의 남쪽 혹은 동쪽에 있다는 단혈산(丹穴山)이라는 곳으로 상상되었다. '산해경(山海經)'에 의하면 단혈산은 금과 옥이 풍부하게 나는 산으로 단수(丹水)라는 강이 흘러나와 남쪽으로 발해(渤海)에 흘러든다고 했으니 혹시 우리 민족과 관련된 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발해의 북쪽이면 요동(遼東) 지역으로 고조선의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이곳에 사는 봉황은 학 같은 생김새에 오색 빛깔을 한 아름다운 새였는데 재미있는 것은 머리의 무늬는 덕(德), 날개의 무늬는 의(義), 등의 무늬는 예(禮), 가슴의 무늬는 인(仁), 배의 무늬는 신(信)이라는 글자와 비슷하였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봉황은 덕성과 정의로움, 예의 바름, 인자함, 믿음성 등의 바람직한 성품들을 모두 갖춘 새였던 것이다. 봉황에 대한 이러한 미화된 인식은 아마 후세에 유학자들에 의해 덧붙여진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한 성품들은 모두 유교에서 추구하는 가치들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봉황은 완벽한 새였던 것 같다. 이 새는 절로 흥이 나서 노래하고 춤추곤 했는데 이 새가 나타나면 천하가 태평해졌다 한다. 또는 태평성대에 출현해서 훌륭한 임금이 다스리고 있는 시대라는 것을 입증했다고 한다.
봉황과 비슷한 상서로운 새로 서쪽 여상산(女牀山)에 사는 난조(鸞鳥)도 있다. 이 새는 꿩 같으며 오색 무늬가 있는데 이 새 역시 나타나면 천하가 편안해졌다 한다.
아무래도 흉조가 길조보다 많은 것으로 보아 고대인들의 삶에는 그만큼 어려움이 많았던 모양이다. 조류에 의해 빚어진다고 상상하는 갖가지 현상들은 그대로 고대인들의 삶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자연과 분리된 것이 아니라 일체가 된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연은 곧 그들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글 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그림 서용선 서울대 서양화과 교수
■질투심 없애는 黃鳥
북쪽 헌원산(軒轅山)에 사는 황조(黃鳥)라는 새는 올빼미같이 생겼고 머리는 흰 빛인데 제 이름 소리를 내고 울고 다녔다. 이 새를 잡아 먹으면 불같은 질투심이 돌연 사라졌다.
고구려 유리왕(琉璃王)이 중국으로부터 어여쁜 후궁을 들였다. 그런데 그녀는 임금이 전에 총애했던 후궁을 시샘하다가 화가 나서 중국으로 달아나 버렸다. 유리왕이 그녀를 쫓아갔으나 잡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에 두 마리의 새가 나뭇가지 위에서 노니는 것을 보고 느낀 바가 있어 불렀다는 노래가 황조가(黃鳥歌)이다.
"펄펄 나니는 저 황조여, 암수컷이 다정하기만 하구나. 외로운 이 내 몸은, 그 누구와 더불어 돌아갈꼬." 이 시에서 황조를 꾀꼬리로 번역하지만 유리왕은 질투하지 않게 한다는 신화 속의 황조를 이야기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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