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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북악산에 청와대가 없네" / 이명복 '권력의 오만…'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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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북악산에 청와대가 없네" / 이명복 '권력의 오만…' 전

입력
2002.1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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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더없이 맑은 날, 숲으로 덮인 바위산이 싱그럽게 그려져 있다. 야트막한 산 앞쪽에는 잔디마당이 있고 정원수도 심겨져있다. 그런데 이 산이 어디서 보던 산이다. 서울 광화문 네거리서 바라다보이는 북악산의 모습이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관객은 이 산 그림에서 뭔가 빠져있음을 알게 된다. 청와대, 당연히 그곳에 있어야 할 건물이 사라져버린 것이다.예술의전당에서 4∼12일 열리는 화가 이명복(44)씨 초대전 '권력의 오만과 인간의 탐욕에 대한 조소'의 출품작이다. 마침 대통령 선거철에 보는 그의 청와대가 없는 북악산 그림 '산'은 하나의 풍경화지만, 권력과 권위에 대한 우리의 일상적 무감각을 비틀고 흔든다.

이씨의 초대전은 예술의전당이 올해부터 만45세 미만의 젊고 유망한 순수미술 작가들을 선정해 전시를 지원하는 'SAC(Seoul Arts Center) 젊은 작가전'의 두번째 프로그램으로 열리는 것. 첫 해인 올해 주제는 "미술의 독립성과 미술 외적인 것, 특히 정치와 관련된 현실과의 관계를 조명한다"는 취지에서 '정치미학'으로 정해졌다.

이씨의 조소는 국회의사당 건물을 없애버린 여의도의 밤 모습을 그린 '여의도 풍경'에서도 이어진다. 작가 자신의 모습을 정치인, 공직자와 같은 포즈로 그려넣은 '세 남자'에서는 스스로의 욕망이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드러내기도 한다. 부시 미국 대통령의 모습을 그린 '위대한 오만'은 세계적 권력자의 말 한 마디가 곧 폭력과 상처로 이어지는 현실의 폭로와 거기에 대한 비웃음이다. 부시의 얼굴 뒤로 도륙된 고깃덩어리들이 걸려있고 그 위로 전투기가 날고 있다.

정치적 비판 외에 이씨 그림의 또 한 축을 이루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 인간의 탐욕에 대한 조롱이다. 거대한 도시의 밤하늘에 매달린 소를 그린 '드디어 날다'는 광우병으로 죽은 소를 통해 풍요로워만 보이는 소비문화의 이면에 신종 역병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문제를 말한다. '수상한 정물'로 이름붙여진 정물화 시리즈는 먹거리 그림을 통해 인간 탐욕과 정치적 변절이라는 주제를 한 군데 담아놓는다. 예를 들어 배추와 닭을 한 몸체에 붙여 그린 그림으로 그는 이 기이한 변종을 정치적 변절의 의미로 치환한다. 시뻘건 해장국을 거대하게 확대해 그린 '홍수'에서는 먹을것으로 상징되는 권력과 돈, 명예에 대한 욕망을 섬뜩하게 버무려 놓았다.

이씨는 중앙대 예술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많은 단체전과 7차례의 초대개인전에 출품했다. 80년대 민중미술 이후 비판의식이 희석된듯한 우리 화단에서 드물게 정치·사회적 모순과 부조리에 대한 발언을 풍부한 상상력과 회화적 맛으로 계속해온 작가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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