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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VS 盧] (6) 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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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VS 盧] (6) 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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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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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의 말투는 아주 논리적이다. 상세한 설명과 논거 제시로 상대를 설득하려 한다. 그의 말에 첫째, 둘째라는 표현이 잦은 이유다. 대북 상호주의를 주장하면서 "첫째는 평화공존의 터전 마련, 둘째는 분단 고통해소, 셋째는 자유왕래와 통신…"이라고 열거하는 식이다.그래서 말이 길어지고 감정을 담아내지 못한다는 평도 듣는다. 31년간 판결문을 써 온 법관 생활을 통해 굳어진 버릇이지만 대중 정치인의 화법치고는 어려운 쪽이다.

남의 말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다. 대충 대충은 그에게 통하지 않는다. 대신 논거가 분명하면 애초의 생각이 다르더라도 금세 받아 들인다.

이런 그도 대중 연설에서는 더러 감정이 북받쳐 격한 표현을 쏟기도 한다. 지난달 28일 대구 유세에서는 "나의 뜨거운 심장과 피를 바치겠다"고 말했다.

그는 역설(逆說)과 반어법(反語法)을 즐겨 쓴다. 친근감을 가진 상대에게는 더욱 그렇다. 지난달 24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대선자금 공개 서약식에서 이 후보는 대뜸 시민단체 대표들과 동석한 K의원을 가리키며 "열심히 선거운동을 하지 않아 큰 문제"라고 말했다.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서약식이 끝난 뒤 K의원에게 "당신, 후보에게 이렇게 찍혀서 앞으로 어떡하느냐"고 걱정이 대단했지만 이 후보의 화법에 익숙한 K의원은 도리어 미소를 지었다.

이런 역설은 자칫하면 오해를 산다. 1997년 초 구설수를 탔던 '창자 발언'이 그랬다는 게 이 후보의 설명이다. 그는 "판사시절 회식을 하면 장래성이 엿보이는 후배일수록 유난히 심한 소리도 하고 술도 더 먹였다"며 "당시 언론인들에게 친근감의 표시로 했던 말인데 분위기가 썰렁해져서 당황했다"고 술회했다.

이 후보가 보다 감각적 표현이나 세련된 유머를 구사할 수 있었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런 것과는 인연이 멀다. '창자'의 경우처럼 농담이 오히려 더 투박하고 직설적이다.

후보 법률 고문인 서정우(徐廷友) 변호사는 "법관 때도 재미있는 얘기를 한다고 했지만 철 지난 것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속마음 표현에 인색한 편이다. 주변 사람들은 선이 굵은 그의 성격 등을 이유로 들지만 가끔은 무심한 것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한 측근은 "이 후보는 1년 동안 나와 독대를 여러 번 했지만 한번도 내가 어디 사는지, 아이가 몇 명인지 물은 적이 없다"고 전했다.

7월 임시국회에서 안영근(安泳根) 의원이 본회의 5분 발언에 나서서 민주당의 병풍(兵風) 공세를 강하게 맞받아쳤다. 안 의원이 당시만 해도 이 후보와 거리가 있던 이부영(李富榮) 의원의 측근이란 점에서 상당히 이례적 광경이었다.

며칠 후 이 후보로부터 안 의원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이런 저런 격려와 덕담이 있을 법했지만 이 후보의 말은 딱 한마디였다. "안 의원, 수고했어." 그러나 안 의원은 "그 정도면 많은 함의(含意)가 있는 게 아니냐"며 웃었다.

/유성식기자 ssyoo@hk.co.kr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의 화법은 논리적·직설적·서민 친화적이면서 되받아치기에 능한 점 등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그는 "남의 얘기도 논리적이지 않으면 인정하지 않고 대충 말하는 것은 용인하지 않을 정도"(이기명·李基明 후원회장)로 논리를 중시한다. 이낙연(李洛淵) 대변인은 "노 후보는 자기 생각을 남에게 분명하게 인식시키기 위해 '우리나라는 경제위기 극복에 성공했습니다. 성공했는데 다시 위기가 왔습니다. 위기가 왔는데 ∼∼∼다'는 식으로 앞 문장 끝을 반복하는 습관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 회장은 "논리를 선호하다 보니 결론을 내기 위해 서론이 길고 전제가 많아서 답답해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KBS 토론회에서 한 여대생 패널리스트가 "집권 시 미술관 지원대책을 갖고 있느냐"고 묻자 노 후보가 인간의 본능 발전 단계, 문화욕구의 본질과 역할 등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다 막상 지원대책은 제한시간에 걸려 답변하지 못했던 게 실례이다.

노 후보의 직설화법은 "거짓말을 못하는 진솔한 사람""경우 없고 너무 튄다"는 양극의 평을 낳고 있다. 올해 지방선거 과정서 노 후보는"남북 대화 하나만 성공시키면 다 깽판 쳐도 괜찮다""내가 시정잡배면 한나라당 모씨는 양아치냐"는 등의 거친 말로 비판을 자초했다. 동대문시장 유세에선 정대철(鄭大哲) 의원을 옆에 두고 "정 선배는 여유 있고 인간미가 넘쳐서 대선후보가 못 됐지만 나는 독해서 대선후보가 됐다. 사람은 독해야 한다"고 말해 주변을 황당하게 만들었다. 한 참모는 "모 신문과의 화해를 권하자 노 후보는 정색을 하면서 '00신문과는 밥 먹지 마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시골 빈농가 출신인 노 후보는 사석에선 사투리와 질퍽한 입담 등 서민친화적인 말투를 구사한다. 그는 친구들, 특히 지방학교 동문들을 만나면 완벽하게 사투리를 쓴다. 또 술자리 같은 데서는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속어를 추임새로 활용하기도 한다. 자신이나 주변의 흠을 농담의 소재로 삼고 비유를 잘하는 것도 노 후보의 특기. 그는 1일 마산에서 돼지 저금통 후원금을 전달 받곤 "요즘 돼지 저금통을 자꾸 받다 보니 내 얼굴이 돼지를 닮아가는 것 같다"고 말해 청중을 웃겼다. 대선후보가 되고 2개월쯤 지나 참모들이 부인 권양숙(權良淑)씨를 둘러싼 잡음이 나오지 않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자 "허 참, 내놓을 것 없는 사람과 사니 득 되는 것도 있다"며 농담으로 받았다.

노 후보는 위기 상황을 말로 되받아쳐 모면하는 데에도 능하다는 얘기를 듣는다. 후보 경선 때 장인의 좌익 경력이 문제가 되자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장인 때문에 아내를 버려야 합니까. 평생 한을 품고 살아 온 아내가 또 눈물을 흘려야 하겠습니까"라고 반문했던 게 대표적인 예이다.

'화난 노무현'의 말투에 대해 서갑원(徐甲源) 후보 의전팀장은 "2000년 총선 때 참모들이 후보의 뜻과 다르게 모 인사를 찬조연사로 초청하자 '니들이 맘대로 다 하나'라며 화를 낸 일이 있다"고 소개했다.

/신효섭기자 h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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