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세계박람회 유치 실패는 '국가 외교력과 개최도시 인지도 열세'를 극복하지 못한 아쉬운 패배였다. 한국의 가장 큰 패인은 '중국 상하이'라는 거대 도시에 '전남 여수'라는 대항마로 맞서기에는 처음부터 한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한국은 정부와 기업, 지방자치단체가 총동원돼 전방위 유치전을 펼쳐 한 때 중국을 위협하는 듯 했으나, 이번 박람회 유치를 국가적 과제로 선포하고 달려든 중국의 높은 벽을 넘지 못했다.▶개최 도시의 인지도 열세
한국이 5년여간 유치 활동을 전개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전남 여수라는 개최 도시의 한계였다. 전남 여수는 도시 인지도나 인프라에서 중국 상하이와 러시아 모스크바에 대항하기는 처음부터 힘이 부쳤다. 인지도는 차지하고라도 인구 규모만 봐도 상하이는 1700만명, 모스크바는 950만명으로 인구 32만명의 소도시인 여수와는 비교 자체가 안된다.
한국 유치단도 이런 취약점을 인식, 전윤철 부총리 등이 외신 기자회견에서 "여수처럼 작은 도시가 세계박람회를 유치하는 것이 전세계의 균형적인 발전을 추구하는 박람회의 취지에 맞고 친환경적인 운영에도 보탬이 된다"며 미개발 지역에 대한 균형 발전론을 제기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에 반해 상하이의 경우 급성장하는 중국의 경제력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어 중국 진출을 원하는 구미 선진국들의 이해가 맞아 떨어졌다. 막판에 코카콜라 등 다국적 기업들이 상하이 지지를 표명하며 표몰이에 나선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으로 분석된다.
▶외교전의 패배
이번 유치전은 국가간 자존심과 막대한 경제적 이해가 걸린 '총성 없는 전쟁'이었다. 따라서 정부 자체내의 협조와 민·관의 팀워크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러나 한국은 정부 자체내의 공조 체제가 원할 하지 않은 데다 민간과 정부가 따로 가는 바람에 효과적인 외교전을 펼치지 못했다. 또 세계박람회기구(BIE) 회원국 중 중국의 외교공관이 설치된 국가는 76개, 러시아 63개인데 비해 한국은 57개국에 불과한 것도 불리한 요인이었다. 공관은 현지 사정을 가장 잘 아는 요원이라는 점에서 중국에 비해 표밭 다지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또 한국은 월드컵, 올림픽, 세계박람회 등 주요행사를 아시아가 독차지한다는 서유럽과 일부 선진국의 '아시아의 보복'에 밀려 막판 세몰이에 실패했다.
/모나코=송영웅기자 herosong@hk.co.kr
○…1차 투표에서 우리나라는 28표를 얻어 중국의 36표에 비해 8표가 뒤지면서 2위에 머물렀다. 그러나 2차에서 34대 38로 4표차로 줄어 한때 희망의 싹이 보였으나 3차 투표에서 32대 44로 격차가 벌어지면서 사실상 결판이 났다. 3차까지 남은 러시아가 얻은 12표 전부가 우리나라에 와도 중국과 동일한 득표를 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결국 4차까지 남은 양자 대결에서 34대 54로 20표 차이로 오히려 격차가 벌어졌다. 최종 투표에서 오히려 격차가 더욱 벌어진 것은 3차 투표에서 러시아를 지지했던 독립국가연합(CIS) 국가들이 대거 중국 지지에 돌아섰기 때문. 우리측은 전날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러시아 정상회담에서 양국간 사전밀약이 있었던 때문으로 분석했다.
○…한국대표단은 이른 아침부터 투표가 실시되는 그리말디 포럼(총회장) 앞바다에 '예스 여수'라고 적힌 대형 돛을 단 3척의 홍보 요트를 띄워 놓고 BIE 대표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해양수산부는 3일 우리나라가 박람회유치에 실패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크게 아쉬워하는 분위기였다. 이날 밤늦게까지 비상 근무를 하다 유치 실패 소식을 접한 해양부 직원들은" 상하이와 팽팽한 접전을 벌이더라도 종국에는 여수가 개최지로 결정될 것으로 믿었다"면서 " 엑스포 개최에 실패한 것은 국가적으로큰 손실" 이라고 아쉬워했다.
정몽구 회장이 유치위원장을 맡은 탓에 유치전에 발벗고 나섰던 현대자동차도 유치실패 소식에 초상집 분위기. 3일 밤까지 사무실을 지키던 현대차 주요 임원들과 홍보팀등 직원들은 그동안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것에 못내 안타까워하며 이번 일이 기업 위상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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