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목욕탕에서 홍 원장님을 만났다. 골프로 인연을 맺은 의사인데 얼마 전 미 앨라배마주에 살고 있는 동서의 초청으로 두어 달 그곳에서 지내다가 돌아왔다고 했다. 그 분은 "오늘 골프 하러 가지 않느냐"고 물었다. 티타임이 12시반이라고 대답했더니 "잘 치라"고 인사를 했다. 인사를 받고 탕에 들어가 눈을 감고 있으니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몇 해 전의 일이다. 평소 자주 다니는 골프장에서 골프를 끝내고 락카실로 돌아오자 그 곳에서 일하는 아저씨가 아주 친절하게 "잘 치셨느냐"고 인사를 건넸다. "그렇다"고 대답하고 옷장문을 열려 하는데 그 아저씨는 골프를 마치고 돌아오는 모든 손님들에게 똑같이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샤워를 끝내고 아저씨에게 말을 건넸다.
"골프장에 오신 분들 모두 스코어가 좋은 것은 아니지 않겠느냐. 좋은 스코어를 낸 사람은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스코어가 좋지 않았던 손님이라면 아저씨의 인사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지 생각해 본 적이 있으세요. 만일 제가 스코어가 아주 나빴다면 차라리 인사를 받지 않은 게 더 좋았을 것 같아요. ' 잘 치셨습니까' 보다는 '즐거우셨습니까'라고 인사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요." 그런 일이 있은 후 그 골프장의 락카실에서 일하는 아저씨는 물론 그곳에서 일하는 다른 젊은이들도 모두 "즐거우셨습니까"라는 말로 바꿔 손님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잘 치셨습니까"나 "즐거우셨습니까"나 결과적으로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그 날 잘 친 사람이라면 골프를 하는 동안 즐거웠을 개연성이 많고 잘 못 친 사람에게는 즐거움보다 언짢은 일이 더 많았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하느냐 못하느냐를 기준으로 골프를 대하는 태도와 골프 하는 것 자체를 즐기는 자세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 때문에 프로가 아닌 나로서는 골프를 잘 해 동반자들의 칭찬을 받거나 그들에게 자랑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기 보다는 언제나 골프가 내게 즐거움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 덕택에 스코어 이외의 여러 가지 사정으로 골프하는 동안 내내 즐거웠던 때가 내게는 자주 있었다. 스코어가 아주 나빴고, 설상가상으로 내기를 했다가 돈을 잃었을지라도 자연과 인공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필드에서의 골프는 신선놀음 그 자체라고 감탄하게 된다거나, 동반자가 아주 좋았다거나, 기막힌 트러블 샷을 했거나, 뜻밖의 칩 인으로 손해를 덜 보게 된 일 등이 그것이다.
/소동기 변호사 sodongk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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