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도 정책 현안을 무분별하게 선거에 이용하는정치권의 책임이 큽니다. 정치 행태가 바뀌지 않는 한 이런 악순환은 계속될 겁니다"내년도 추곡수매가를 2% 내려도 좋고, 3% 올려도 좋다는 양곡유통위원회의 무책임한 정책건의가 화제에 오른 2일. 정부 과천청사의 한 경제부처 관계자는 이 코미디 같은 사태에 대해 오히려 '연민(憐憫)의 정'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만약 수매가 인하가 옳기 때문에 인하안을 채택했다고 칩시다. 그 순간 이 문제는 '이 정부가 농민 굶겨 죽이려 한다'는 식의 네거티브 대선 캠페인으로 변하고 맙니다"라고 말했다.
최근 느닷없는 조흥은행 매각 연기설 때문에 곤욕을 치른 재정경제부 관계자의 얘기도 비슷하다. 이 관계자는 "대선전이 가열되자 양당에서 앞다퉈 나서서 조흥은행 독자생존론이니, 매각 연기론이니 하면서 이 문제를 선거에 끌어들이는 바람에 정책 추진에 혼선만 더해졌다"며 "무슨 말을 하기조차 부담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양곡유통위원회 정책건의와 조흥은행 매각일정 연기 파문의 성격은 다르지만, 정책이 선거에 휘둘려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은 이미 우리에게 낯선 풍경은 아니다. 나라가 국가부도의 거대한 파고에 휘말리던 1997년 늦여름에도 당시 대선 후보들은 기아자동차 공장으로 달려가 무책임한 '독자생존론'을 외쳤다. 결국 타이밍을 놓친 기아자동차 처리는 외환위기의 촉매제로 작용했다.
추곡수매가부터 하이닉스에 이르기까지 소신 있는 결정을 뒤로 미룬 채 정치권만 탓하는 관료 주변을 두둔하자는 것은 아니다. 정책혼선의 일차적 책임은 선거와 이익집단의 목소리에 눌려 눈치보기에만 급급한 관료사회에 있다. 그러나 당장 눈 앞의 몇 만, 몇 십만, 몇 백만표를 따지는 선거운동 행태야말로 합리적인 정책결정을 가로막는 더 큰 걸림돌이라는 점을 최근 사태를 보며 절감한다.
장인철 경제부 기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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