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냉장고가 돌풍을 일으켰을 때 김치업계의 반응은 떨떠름했다. 보관 기간이 길어지면 김치가 잘 안 팔릴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과는 예상과 정반대였다. 김치 냉장고 시장이 커질수록 김치 소비량도 늘어났다. 김치 냉장고에서 익힌 김치가 맛있다는 것을 알게 된 소비자들이 김치를 더 찾게 됐다. 언뜻 봐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냉장고 시장과 김치 산업간에 시너지 효과가 난 것이다. 성격이 전혀 다른 업종이 뭉쳐서 의외의 경쟁력을 갖게 되는 것이 짝짓기의 묘미다.■ 은행과 신용카드 업체들이 어학원이나 여행사와 합작 마케팅을 벌이는 것도 이(異)업종 간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은행이 부동산 전문업체와 함께 부동산 자산관리 서비스를 실시 하거나, 유명 어학원과 제휴해 고객에게 영어 캠프 상품을 권유하는 일은 더 이상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어디 금융권 뿐인가. 대형 가전 유통업체들도 예식장·사진관·여행사와 제휴해 가전제품 구입과 결혼식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게 한 혼수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업종간 짝짓기는 이제 21세기의 새로운 경영화두로 떠 올랐다.
■ 하지만 정작 짝짓기 마케팅의 원조는 정치권이다. 세가 불리한 정치 집단이 정권 획득을 위해 손을 잡는 것도 일종의 짝짓기다. 당 대 당으로 이뤄지는 합당이나 탈당, 다른 정당으로의 입당도 크게 보면 정치적 짝짓기의 범주에 들어간다. 우리 정치사의 대표적인 짝짓기는 DJP연합이었다. 보수를 자임하는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 진보성향의 김대중 당시 국민회의 대통령후보와의 연대는 이업종간 제휴만큼이나 파격적이었다. 정치적 야합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 짝짓기는 정권교체를 이뤄내는 데 성공했다.
■ 민주당과 국민통합21이 2004년 17대 국회에서 분권형 대통령제를 근간으로 하는 개헌을 추진키로 합의했다. 실현 여부는 미지수지만, 정치적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한 대통령 후보 단일화의 결과물인 것은 분명하다. 국민통합21의 정몽준 대표가 민주당 노무현후보 선거대책위원회 명예위원장을 맡기로 한 것도 대선승리를 위한 짝짓기가 '절반의 성공'을 거뒀음을 보여준다. 성장배경이나 정치적 지향점이 전혀 다른 대선 후보간 짝짓기 마케팅의 성공 여부를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는 대선 관전 포인트 중 하나일 것이다.
/이창민 논설위원cm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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