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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쓴소리]다원적 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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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쓴소리]다원적 무지

입력
2002.1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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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후보들에 대한 유권자들의 지지도와 당선 가능성에 대한 답이 크게 다르다. A 후보를 지지하지만 B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될 것이라고 답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이른바 '다원적 무지'(pluralistic ignorance) 때문이다. '대중 착각 현상' 또는 '집단적 오해'라고 불러도 좋겠다. 이는 어떤 사건 또는 어떤 이슈에 대한 소수의 의견을 다수의 의견이라고 잘못 인식하거나 또는 그 반대로 다수의 의견을 소수의 의견으로 잘못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박정순 경북대 교수는 이 개념을 지역감정 연구에 도입한 바 있다. 박 교수는 대구와 광주의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상대 지역민에 대한 응답자의 개인적 호감을 물었다. 또 '같은 지역민들은 상대 지역민을 어떻게 생각한다고 보는지'와 '상대 지역민들은 자기 지역민을 어떻게 생각한다고 보는지'를 물었다. 두 지역 주민들은 자기 지역 주민들이 갖고 있는 상대 지역민에 대한 배타적 감정이 실상보다 더 강하고 보편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음이 나타났다. 대구의 경우 호남인들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실제로는 43.6%임에 비해 84.1%의 자기 지역민들이 호남인들을 싫어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이 같은 현상은 격차가 약간 적게 나타나고 있으나 광주 사람들에게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났다(34.9% 대 72.9%).

이 같은 과잉 지각은 상대 지역민이 내 지역민들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문제에서도 나타났다. 실제로는 광주 응답자들 중 34.9%가 대구 지역민들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데 비해 대구 응답자들은 광주 사람들의 86.1%가 대구 사람들을 나쁘게 생각한다고 믿고 있으며, 실상은 대구 응답자의 43.6%가 광주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지만 광주 응답자들은 대구 사람들의 83.5%가 광주 사람들을 나쁘게 본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 같은 '다원적 무지'는 사람들의 보수화 경향을 설명하는 데에도 유효하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착하지만 세상은 살벌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과잉 방어' 자세로 대한다. 예컨대, 운전자들은 차량 접촉사고 시 상대편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일단 큰소리를 쳐야 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매우 양심적인 두 운전자 사이에서도 멱살을 잡고 싸우는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과감한 개혁을 원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원치 않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절대 다수가 과감한 개혁을 원하는 사회에서 개혁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어이 없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불행한 역사를 많이 겪은 나라일수록 '다원적 무지'가 많이 발생한다. 세상을 살벌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그 만큼 많기 때문이다. 이제 그런 의식을 바꿀 때가 되었다. 남들은 어떨 것이라고 신경 쓰는 대신 자신의 생각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 건강에도 좋다.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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