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13대 대통령 선거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선거여론조사가 홍수를 이루고 있다. 각 정당, 후보자, 언론사들이 올 한 해 동안 실시한 선거여론조사만 해도 족히 수천 건에 달할 정도이다.모든 사물이 그렇듯이 여론조사는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갖고 있다. 먼저 선거여론조사는 몇 가지 측면에서 민주주의 발전에 긍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유권자들의 지지 후보 선택에 도움을 준다는 점이다. 다수의 후보들이 난립할 때 그 중에서 경쟁력 있는 소수의 후보들을 압축해 주는 여과기능을 수행한다. 다시 말해 여론조사는 유권자들에게 당선 가능성이 있는 후보와 가능성이 없는 후보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여 유권자들의 후보 선택을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선거여론조사는 정당의 후보지명대회를 대신하여 후보를 선정할 뿐만 아니라 이번 노무현-정몽준 후보간의 후보단일화에서 보았듯이 서로 다른 정당간의 후보를 단일화하는 데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선거여론조사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리 말에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있듯이 여론조사에서 물어보는 말에 따라 그 결과가 크게 달라질 뿐만 아니라 조사 방법, 표본추출 방법, 조사주최자 등에 따라서도 조사결과가 달라진다. 더욱 중요한 것은 아무리 정확한 여론조사라 하더라도 조사자가 이를 악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여론조사 결과를 전달하는 언론이 사실을 왜곡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언론의 여론조사가 안고 있는 문제점의 대부분은 여론조사 자체가 갖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에서 오는 것이라기보다는 언론이 조사결과를 보도하는 과정에서 오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본질적으로 여론조사는 과학이면서 동시에 기술이다. 재미없고 설명하기 어려운 여론조사 결과를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기교를 부리는 과정에서 과학의 정확성이 깨지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모든 여론조사는 '본 조사는 95% 신뢰수준에서 표본오차 갻3%포인트' 등의 전제를 밝힌다. 그럼에도 언론은 표본오차가 갖고 있는 의미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라는 설명도 없이 조사에서 나온 수치가 마치 절대적인 것처럼 인식하도록 보도함으로써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그래서 표본오차를 감안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후보간의 1% 차이를 지나치게 강조하여 무리하게 후보간의 순위를 매기게 된다. 언론이 여론조사의 과학성보다는 기술성에 더 높은 가치를 둔다면 그것은 과학의 이름으로 포장한 상업적 저널리즘에 다름 아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여론조사는 만능이 아니며, 조사자의 의도에 따라 얼마든지 조작된 여론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국민들이 명심하는 일이다. 그래서 수치로 치장한 여론이 반드시 객관적이고 정확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조사결과를 맹신하기 전에 조사 방법 및 절차, 그리고 표본의 특성 등에 관한 정보가 얼마나 충실하고 정확하게 제시되었는지를 먼저 검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권 혁 남 전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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