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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국토기행](8) 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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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국토기행](8) 군산

입력
2002.1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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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편 멀리 금강 하구둑이 보이는 전북 군산시 금암동 째보선창. 서해바다와 만난 금강의 한 줄기가 군산 내륙쪽으로 째지고 들어간 모양이 언청이(째보)를 닮았다고 해서 째보선창이다. 녹이 벌겋게 슨 폐선 수십 척과 문 닫은 합판 공장, 허름한 생맥주 집 간판으로만 봐서는 옛 시절 영화가 도저히 느껴지지 않는다. 군산 태생의 작가 채만식(1902∼1950)에 따르면 1930년대 그 얼마나 번창했던 째보선창인가.'날이 한가한 것과는 딴판으로 선창은 분주하다. 크고 작은 목선들이 저마다 높고 낮은 돛대를 웅긋쭝긋 떠받고 물이 안 보이게 선창가로 빡빡이 들어 밀렸다. 배마다 셈 세는 소리가 아니면 닻 감는 소리로 사공들이 아우성을 친다. 지게 진 짐꾼들과 광주리를 인 아낙네들이 장속같이 분주하다.'('탁류')

째보선창 인근에서 식당을 하는 군산 토박이 채순자(55·여)씨의 말이다. "이제 선창기능은 완전히 상실했어요. 이 가게도 예전 수산시장이 있던 자리죠. 토사가 쌓이는 바람에 지금은 폐선만 모아 놓는 곳이 돼 버렸어요. 1970년대 말만 해도 살아있는 어항이었는데 지금은 물이 들어와야 겨우 배 한두 척이 오갈 뿐이죠."

옛 영화가 사라진 곳은 비단 째보선창만이 아니다. 서해안고속도로 군산 IC에서 빠져 나와 군산시내로 들어가다 보면 초입 오른편에 텅 빈 공장건물이 수없이 많다. 시청 공무원마저 "저 흉물들을 빨리 없애야 군산이 발전할 텐데"라고 말할 정도지만 이곳은 1970년대 전북과 한국 경제를 이끌던 한국합판 세풍제지 백화양조 청구목재 등 군산 8대 기업이 자리잡고 있던 곳이다.

동행한 이복웅(57) 군산문화원장은 이렇게 회상했다. "1970년대 군산은 합판으로 유명했습니다. 당시 이곳에서 생산된 베니어 합판이 안 쓰인 집이나 공장이 없었으니까요. 전국에서 중개상들이 선금을 주고도 15일 동안 머문 끝에야 겨우 합판을 구해갔을 정도죠. 그러다 80년대부터 원목 수출만 하던 동남아 국가들이 직접 합판제조에 뛰어들면서 군산의 합판과 종이 공장은 모두 망했습니다. 그 전까지는 군산시내가 불야성을 이뤄 만나는 사람들마다 밤새 술을 마시곤 했죠."

군산은 이렇게 쇠잔하고 마는 것일까. "갯벌이 이제 육지로 올라오겠네"라는 말이 들릴 정도로 군산항 앞바다의 토사는 점점 쌓여 가고, 인근 앞바다에서 무진장으로 잡히던 우럭과 조기는 제주 근해까지 가야 잡히는데…. "어렸을 적 저 앞바다에서 망둥어를 잡아 불에 구워먹고 뛰놀았다. 그러나 지금은 발도 담그기 힘들 정도로 오염됐다"(채기석·53·당구장 경영)는 푸념이 곳곳에서 들린다.

이른 새벽 해망동 어판장을 찾았다. 다행히 많은 어선들이 항구에 몰려 있다. 내륙의 주차전쟁은 비교가 안 될 정도다. 80∼90톤짜리 배들이 서로 스치듯 절묘하게 항구에 정박하는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난다. 이어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나오는 조기와 갈치, 병어와 우럭…. 이미 배에서 꽁꽁 얼린 상태이지만 이들을 나르는 잡역부와 선주, 어부들의 표정은 밝기만 하다.

"물론 예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죠. 70년대만 해도 '어판장 개는 만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니까요. 그러나 지금은 어획량도 줄고 어선도 150척에서 30척으로 줄어들었죠. 그래도 이렇게 어부와 중매인, 인근 상인들이 복작거리는 아침이면 군산은 아직 살아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군산은 결코 죽지 않았습니다." 어판장 관리를 맡고 있는 오홍섭(54) 해망동공판장장의 말이다.

비릿한 생선 냄새를 뒤로 하고 외항쪽에 자리잡은 국가산업단지에 들어서면 또 다른 군산의 활기찬 현재와 미래가 보인다. 바다를 메워 조성한 이곳 군산국가산업단지가 207만평, 2006년 완공 예정인 군산·장흥 국가산업단지가 482만평. 한마디로 지도가 바뀌었다. 전국에서 지평선이 보이는 국가산업단지로는 군산이 유일할 만큼 광활한 대지 위에 동양화학 대우상용차 GM대우 기아특수강 등 450여 개 업체가 우뚝 들어선 모양이 사뭇 대단하다. 외항 끝에서는 '개발과 보전' 논란 속에 세계 최장(33㎞)의 새만금방조제 공사가 한창이다.

국가산업단지 내 70만평 부지 위에 자리잡은 GM대우(옛 대우자동차) 군산공장. 로봇과 사람이 뒤엉켜 57초 당 준중형 신차 '라세티'를 1대씩 토해내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불꽃을 튀기며 정확히 용접봉을 꽂아대는 로봇의 기다란 팔, 아기 다루듯 세심하게 차체를 살피는 직원들…. 1999년 8월 대우자동차가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간 지 3년2개월 여 만인 10월18일 GM대우로 새 기지개를 활짝 핀 것이다.

조립공장에서 만난 한 직원(33·품질관리부)은 이렇게 말했다. "회사가 가장 어려울 때 일주일의 반은 라인이 모두 멈췄죠. 일당을 받는 생산직 직원은 타격이 아주 컸습니다. 아르바이트로 대리운전이나 공사판 막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해야 했죠. 이제서야 회사가 제대로 돌아간다는 느낌입니다. 대우의 몰락과 함께 꺾였던 자부심도 되살아 나기 시작했습니다."

사기업의 활기에 이처럼 관심이 가는 이유는 GM대우와 관련 자동차부품업체가 군산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워낙 막대하기 때문이다. 2000년 군산 전체 제조업체의 매출액 5조1,000억원 중 자동차 관련업체의 매출액이 51%(2조5,900억원)를 차지했을 정도. 진상범 GM대우 군산공장 부사장은 "GM대우가 1,500명을 신규 채용하면 인근 부품협력업체는 최소 3,000명 이상을 채용하게 된다. 인력고용만으로도 자동차산업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엄청나다. 군산공장을 GM대우의 대(對)중국 자동차수출 전진기지로 키우겠다"고 말했다.

군산 기행의 마지막 도착지는 군산외항의 서쪽 끝 비응도. 예전에는 섬이었지만 갯벌을 메운 바람에 이제는 육지가 됐다. 낚시꾼 몇 명만 보이는 이곳 선착장에서 멀리 고군산군도를 향해 달음박질치는 새만금방조제의 모습이 위압적이다. 2011년 전북 부안군과 고군산군도, 그리고 이곳 비응도를 연결하는 방조제가 완성되면 저 푸른 바다는 1억2,000만 평의 거대한 호수와 육지로 변해버릴 터.

환경재앙을 예고한 환경론자들의 말이 맞을지, 신도시와 농업단지 국제무역항 건설로 새로운 보금자리가 될지 동행한 시청 직원도, 그물을 손질하는 초로의 어부도 선뜻 대답을 못 한다. 고군산군도의 여러 섬들도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인간들의 잰 발걸음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글=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사진=고영권 기자

■ 해망동 어판장 경매사 손종만씨

11월28일 오전6시 군산 해망동 어판장. 상자 수천 개에 가득 담긴 냉동 조기와 갈치, 병어와 우럭이 경매에 붙여졌다. 씨알 좋은 놈을 적정 가격에 사고 팔려는 중매인 40여 명과 경매사 4명의 움직임이 바쁘다. 군산수산업협동조합 소속 경매사 손종만(54)씨의 굵고 우렁찬 목소리가 비릿한 선착장의 정적을 깨운다. "이야∼. 씨알 좋은 조기 7석이∼, 양만∼, 양만3,000∼. 양만5,000! 21번!"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이야'는 중매인의 관심을 끌기 위한 소리이죠. '7석이'는 한 상자에 조기가 7열로 깔렸다는 뜻입니다. 씨알이 굵을수록 적게 담으니까 9석이보다는 8석이가, 8석이보다는 7석이가 가격이 높죠. '양만'은 2만이라는 뜻인데 싼 병어 같으면 2만원, 비싼 조기는 20만원을 가리킵니다. 결국 21번 중매인에게 조기 한 상자 당 25만원씩 팔렸다는 뜻입니다."

전북 전주에서 태어난 손씨가 군산으로 이사 와 이곳 어판장에서 경매사로 일한 지 벌써 28년째. 그는 경매사를 무대에 오른 가수에 비유했다. "중매인의 시선을 한 눈에 받으며 경매를 진행할 때의 흥분과 긴장은 아무도 모릅니다. 원하는 가격을 표시하는 중매인의 손가락 하나를 잘못 보면 조기 1구찌(200상자), 그러니까 돈으로 치면 2,000만∼3,000만원이 한 순간에 날아가니까요. 그러나 20만원을 예상했던 조기 한 상자가 25만원에 낙찰됐을 때는 어부가 힘들게 잡은 생선이 좋은 값을 받은 것 같아 선주는 물론 저까지 기쁩니다."

그가 지켜본 어항으로서 군산의 과거와 현재는 어떤 모습일까. "예전에는 만선이 다반사였어요. 깃발을 있는 대로 나부끼며 덩실덩실 춤을 추며 입항할 때는 선주나 어부뿐만 아니라 군산 시민 전체가 흥이 났죠. 이 어판장도 거의 매일 경매에 오른 생선들로 차고 넘쳤죠. 그러나 지금은 어획량 감소와 어선 감축으로 인정까지 메말랐어요. 어민들의 씀씀이도 약해졌지요."

그는 군산과 해망동의 미래를 활어에서 찾았다. 지금처럼 냉동 생선이 아니라 활어가 경매의 주인공이 돼야 타 지역에 비해 경쟁력이 생긴다는 뜻이다. "군산 수산인들의 바람은 하루빨리 외항쪽에 있는 비응도에 본격적인 어항과 활어전문 어판장이 생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항인 이곳 해망동 어항까지 배가 들어오기에는 시간이 너무 걸려요. 수질도 너무 안 좋고. 활어는 조금만 잡아도 높은 가격을 받으니까 앞으로 경매의 중심은 일본처럼 활어가 될 게 분명합니다."

/김관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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