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드랑이 위로만 온전하다"고 했다. 중증 척수장애인 김윤숙(31)씨. 그는 참 맑고, 밝았다. 건강해 보인다는 인사에 그는 "그래도 아직은 죽고싶을 때가 가끔 있다"고 했다.조심스럽게 사고 경위를 묻자 "대학 1학년 겨울방학(1992년2월) 때 학교 6층 옥상 난간에 걸터앉아 있다가 그만 쿵!"이라며 웃음. 그 사고로 흉추 경추 요추가 모두 끊어졌고, 당시 의사는 '평생 누워서 변을 받아내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지만 그는 1년 뒤 휠체어에 올라 앉았다.
그는 재활센터에서 만난 '척수(척수장애인)' 친구들로부터 휠체어타고 에스컬레이터에 오르는 법을 배웠다. "주위의 시선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얻었다는 게 옳을 지도 모릅니다." 틈틈이 귀금속과 목공예를 익힌 그는 98년 '독립'을 단행했다. 가족에게 짐이 되기 싫어서 였다. 목공예 아르바이트로 모은 전 재산 250만원. 경기 일산 탄현의 농지 한 귀퉁이를 빌려 4평짜리 컨테이너 박스를 들여놓고, 수돗물과 전기를 끌어왔다. 깡통 집을 반으로 나눠 2평은 작업실, 2평은 침실 겸 화장실로 꾸몄다. 거기서 목각 하청 일을 시작했다. 장애인 전국기능대회에 나가 목공예 2등상까지 받은 그의 솜씨다.
척추에 박아 논 철심이 삐져 나와 재수술을 받아야 했던 지난해 초. 그는 전신 마취 전 자신과 또 다른 약속을 했다. '다시 깨어나면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지.' 퇴원후 그는 약속대로 자신의 깡통집 입구에 '뭐 만들까 공방' 간판을 내걸었다.
요즘 그는 장승 목공예 작업에 흠뻑 빠져있다. 그의 작업실에도 크고 작은 나무 장승이 지천. 취미로 시작한 펜싱으로 2002 부산 아·태 장애인경기대회 국가대표로 출전, 비록 1회전에서 탈락했지만 각국 대표단을 상대로 한 목각 장신구 장사는 꽤 쏠쏠했다고 했다. 수입을 묻자 그는 "지난 해 이맘 때 통장에 50만원 있었는데 지금은 500만원이 됐다"고 말했다.
열흘 전 그는 비좁다 싶던 깡통집을 팔고 경기 남양주시 도농동의 한 아파트로 이사했다. 장애인 전용 '게스트하우스'로 한 독지가가 마련해준 곳. 하지만 그는 "내년에는 허름한 농가에다 작업실 겸 거처를 마련할까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그의 꿈은 멋진 목공예 '쟁이'가 되는 것이다. "조각칼 들고 깨동백나무 가지와 씨름하는 게 좋고, 그러다 보면 나중에 뭐든 돼 있겠죠." 그러고는 또 웃었다.
/남양주=글·사진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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