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경험을 얘기할 나이도 아니거니와 내세울 것도 마땅치 않은 나로서는 이런 제목 앞에선 난감할 수밖에 없다. 다만 미용이라는 전문업을 남보다 이른 나이에 시작하면서 겪었던 일들이 내 경험의 전부일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규모가 크거나 작거나 기업 경영의 근간은 사람이 아닌가 싶다. 미용실을 경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1980년대 중반쯤으로 기억한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끝에 서울 돈암동에서 직원들도 제법 많고, 규모도 적지 않은 미용실을 꾸려가고 있었다. 당시 전국에 열병처럼 불었던 노사분규의 여파였을까? 어느날 직원들이 퇴근 후 모종의 시위를 계획하고 나에게 면담을 요구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순간 오히려 덤덤한 기분이었다.
'아, 이 치열한 생존의 경쟁과 미용경영 이라는 압박에서 헤어날 수 있다'는 묘한 해방감(?)마저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경영의 파트너인 남편과 포장마차에서 대책을 논의 하였다. 결국 문을 닫자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것은 시위에 대한 반발적 극약처방이라기 보다 앞길이 창창한 후배들에게 우리의 부족함이 방해가 되어서는 안되겠다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그런데 미용실 문 앞을 점거하고 있던 그들과 대화를 하면서 상황은 묘하게 바뀌고 말았다. 내가 당시의 형편을 자세히 설명한 뒤 "자, 이제 여러분이 원하는 대로 미용실의 문을 닫읍시다"고 말했다. 그것은 우리 부부의 진심이었다.
우리의 마음을 이해하였던 것일까. 이번에는 그들이 오히려 미용실 문을 닫아서는 안 된다고 버텼다. 그 때부터 나와 남편은 셔터를 내리려고 하고, 직원들은 올리려고 하는 '거꾸로 된 몸싸움'이 계속되었다. 그 싸움은 서로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서로가 '내 탓이니까'하는 사죄와 양해의 각축이 되고 말았다.
그들도 나도 젊었고 열정이 앞섰던 시기였고, 많은 부분에서 열악하고 어려움이 많았던 시절의 이야기지만 이후 미용실을 경영해오면서 직원들에 대한 나름대로의 철학을 갖게 만든 계기가 됐다. 그 때 시위의 주동자였던 직원은 지금도 내 곁에서 가장 소중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경영이 힘들거나 어려울 때마다 그 날 밤의 정겨운 몸싸움을 생각하면서 나에게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은 우리 직원들이라는 생각을 늘 하고 있다.
/강 윤 선 준오헤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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