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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첫걸음 뗀 "성희롱 기업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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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첫걸음 뗀 "성희롱 기업책임"

입력
2002.1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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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식자리에서 술 따르기를 강요 당했다며 여성부에 시정신청을 한 교사가 학교로부터 시정신청을 취소하라는 압력을 받고,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하는 등 정신적으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결국 유산까지 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사건의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성희롱 사건이 발생한 경우 피해자에게 "대수롭지 않은 일을 가지고 문제를 삼는다"는 따가운 눈총을 보내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에 비추어 볼 때 그 교사가 얼마나 마음 고생을 했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성희롱에 관대한 우리 사회에서 성희롱 피해를 공식적으로 문제 삼기 위하여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자칫하면 직장 동료들로부터 유별난 사람으로 몰려 따돌림을 당할 수도 있고, 가해자로부터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를 당할 수도 있으며, 직장 생활에서 유형 무형의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월 한국노총이 금융, 관광, 공공부문에 종사하는 남녀 조합원 2,000명을 대상으로 직장 내 성희롱 실태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6%가 전화통화를 포함해 음담패설 등 성희롱을 경험하였는데, 그 중 직장 동료나 상사에게 도움을 요청한 경우가 2.6%, 노동부나 여성부에 신고하고 시정을 요청한 경우가 0.3%라고 하였다니, 위 통계만 보더라도 성희롱 피해자들이 적극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알 수 있다.

이처럼 성희롱 피해자들이 적극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지 못하는 것은 성희롱을 개인간의 문제, 또는 사회생활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일로 당연하게 여기고 소극적으로 대처해 온 기업들의 관행 때문이다.

남녀고용평등법에서는 사업주가 성희롱을 예방하고 근로자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성희롱 예방교육을 실시하고, 성희롱 가해자에게 징계 등의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여전히 기업에서는 형식적으로 성희롱 예방교육을 실시하는 것만으로 의무를 다했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고, 그나마 아예 교육을 실시하지 않는 기업도 많다. 심지어는 피해자에게 사직을 강요하거나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경우까지 있다. 그러다 보니 피해자들이 적극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기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것이다.

필자는 몇 년 전 한 외국기업에 근무하는 여성의 성희롱 피해 사건을 담당한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기업에서 흔히 일어나는 회식자리에서의 성희롱 사건이었는데, 피해자가 본사에 피해사실을 알리자 즉시 미국에 있는 본사의 고위 간부가 직접 한국으로 출장을 와서 사건을 조사하고, 피해자를 만나 요구사항을 듣고, 가해자의 징계와 피해배상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미국의 경우 성희롱 사건에 대하여 기업에 막대한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기업 스스로 성희롱을 방지하고, 가해자를 징계하고 피해자에게 배상을 하는 등 적극적인 노력을 하는 것이다.

직장 내 성희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는 기업의 사용자 책임을 넓게 인정하여야 한다. 성희롱은 개인간의 문제가 아니라 고용환경을 악화시켜 생산성을 저하시키고, 여성 노동자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불법행위이므로, 사업주는 그러한 불법행위가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할 의무가 있으며, 이러한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면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기업의 사용자 책임이 널리 인정된다면, 기업은 자발적으로 성희롱 방지를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하게 될 것이다.

법원이 지난 26일 롯데호텔 여성 노조원들이 성희롱 피해를 입었다며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회사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것은, 기업들에게 성희롱 예방 의무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하겠다.

이 유 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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