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인가, 국민의 사생활을 속속들이 감시하는 '빅 브라더'의 부활인가.1947년 국방부 창설 이래 최대 규모의 공룡부서인 국토안보부 출범을 맞아 미국서 9·11 테러 이후 성안된 각종 테러 방지 법안 및 감시체제에 대한 기본권 침해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5일 22개 부처의 대(對)테러 기능을 통합하는 국토안보부 신설 법안과 함께 미국 내 항구의 안전과 선박 감시 강화를 골자로 하는 '해양수송안전법', 테러 피해를 보상해 주는 '테러보험법'등에 잇달아 서명함으로써 테러와의 전쟁에 필요한 미 본토 방어 전략을 제도적으로 완성했다.
여기에 공항 검색 강화 법안, 국방부가 추진 중인 종합정보인지(Total Information Awareness·TIA) 시스템, 경찰의 사이버안보강화방안(CSEA) 등을 합하면 미 전역을 촘촘히 엮는 총체적 사회감시망이 갖춰지는 셈이다.
이러한 법과 제도의 명분은 물론 무차별적이고 비정규적인 테러의 공포로부터 미 국민을 효율적으로 방어하는 시스템의 구축이다. 하지만 테러 척결의 명분 아래 감춰진 일부 독소 조항으로 인해 전 국민을 잘 짜여진 감시의 그물망 속에 몰아 넣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테러범과 싸우기 위해 시민들을 위협하는가"라는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의 헤드 라인은 최근의 반 테러 입법에 대한 미국민들의 두려움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달러 지폐 위에 유령처럼 솟아 있는 피라미드, 그 꼭대기에서 차갑게 지구를 응시하는 신의 눈동자, 그 아래 붙어 있는 '지식은 힘이다'라는 라틴어 경구.
시사주간 뉴스 위크 최신호(12월 2일자)는 '빅 브라더의 귀환'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국방부 첨단연구계획국(DARPA)의 이 휘장만큼 개인 생활 전반의 정보 데이터 베이스 구축과 검색을 목표로 추진 중인 TIA 시스템의 위험성을 잘 보여주는 것은 없다고 지적했다.
9·11 테러 후 은밀하게 추진되고 있는 이 시스템은 연방정부의 조사관이 모든 정부 및 상업 테이터망에 정보 검색을 위한 '데이터 지뢰'를 깔아놓고 수시로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비행훈련학교에 등록하고, 아파트를 전세내고, 비행기표를 사는 등 개별적으로 벌어지는 테러범들의 행위를 탐색, 일정한 범죄 유형을 감지할 수 있다는 게 국방부가 주장하는 이 시스템의 장점이다.
그러나 이를 개인 생활에 적용할 경우 불특정 시민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신용카드 사용내역, 진료기록, 신문·잡지 구독 상황, 이메일, 은행계좌 등 일상사가 투명하게 관찰된다는 얘기가 된다.
게다가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시절 이란에 무기를 판돈으로 니카라과 반군을 지원한 '이란-콘트라 스캔들'의 장본인인 존 포인덱스터 전 해군중장이 이 시스템 개발을 총지휘하고 있다는 사실도 정부 계획의 어두운 면을 부각시킨다고 뉴스 위크는 지적했다.
특히 국토안보부 법은 연방정부에 온라인 이용자의 실제 위치를 추적할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인터넷 시대를 사는 미국민들의 기본권을 위협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경찰에 인터넷·전화 감청권을 허용하고, 인터넷 업자들에게 가입자에 대한 메일 공개 의무를 지우고 있는 사이버안보강화 조항도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꼽힌다.
새너제이 머큐리 신문은 사회 전체를 손바닥 들여다 보듯 감시하는 빅 브라더가 등장하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을 떠올리며 "이런 조항들은 조지 오웰식 미국을 만들기 위한 훌륭한 치장"이라고 비꼬았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 감시 어떻게 하나
워싱턴 DC 경찰청 내 공동작전 지휘센터.
이 곳에는 주요 도로와 지하철역, 학교, 쇼핑몰 등 시내 곳곳에 설치된 감시카메라를 통해 들어오는 교통 상황과 시민들의 행적이 대형 스크린에 24시간 제공된다. 시민들의 일상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경찰과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의 감시 대상이 되고 있는 셈이다.
여름 휴양지로 유명한 버지니아주 버지니아 비치를 찾는 관광객들은 해변 곳곳에 설치된 특수 감시카메라를 통과해야 한다. 이 카메라를 통해 스캐닝된 얼굴 정보는 경찰 파일과 대조해 범죄자를 식별하는 데 사용된다.
플로리다주 탬파시의 미식 축구 팬들은 2년 전 경기장 입구에 설치된 이 같은 얼굴 인식 카메라에 익숙해져 있다.
미국은 현재 '작전 중'이다.
대(對)테러전 차원에서 개인의 모든 사생활까지 감시 대상이 되고 있다. 시도 때도 없이 TV에 등장하는 9·11 테러 장면이 공포와 불안을 자극하는 사이 거리와 집 안마당까지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고 이메일과 신용카드 기록 등 신상 정보는 정보요원 손에 넘겨지고 있다.
최근 공공도서관들은 도서관 대출 프로그램 정보를 넘겨달라는 정보 당국의 요청을 받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도서관 관계자들은 정보 당국이 특이한 사상적 성향을 지닌 개인을 추적하기 위해 법적 절차를 무시하고 개인 정보를 빼내가고 있다고 고발하고 있다.
신용사회의 토대가 되는 각종 디지털 정보도 감시망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초병 역할을 맡고 있다. 신용카드 뒷면의 마그네틱은 한 개인이 어떤 비행기를 타고 차를 어디서 빌리는지 체크한다. 감시의 눈길은 식생활 습관을 파악할 수 있는 슈퍼마켓 단말기에까지 미치고 있다.
출퇴근길도 감시 대상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도입 예정인 통행료 자동 납부 시스템은 인공위성으로 출퇴근 차량의 운전 패턴을 일일이 추적하도록 돼 있다.
길게 줄을 늘어선 채 신발과 내의까지 검색하는 공항 풍경은 더 이상 낯설지가 않다. 항공 안전에 조바심이 난 항공우주국(NASA)은 검색대에 선 개인의 뇌파와 호흡 등 신체의 미세한 변화를 탐지해 위험 인물을 걸러내는 시스템도 개발 중이다.
뉴욕 타임스는 최근 미 국방부가 전세계 테러리스트를 추적하기 위해 압수수색 영장 없이도 인터넷 메일이나 통화기록 신용카드와 여행정보 등 모든 개인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전자 저인망식 컴퓨터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이 '1984년'에서 예견한 '빅 브라더'(Big Brother)의 살벌한 감시사회가 현실이 되고 있는 느낌이다. 보안업체들은 미국 전체에 설치된 폐쇄회로 TV는 200만 대 이상으로, 지난해 뉴욕을 오가는 사람들의 경우 하루 평균 73∼75분간 감시 카메라에 녹화됐다는 통계도 내놓았다.
/김병주기자 bjkim@hk.co.kr
■ 美 사생활 제한 법령
민간인의 사생활을 제한하는 미국의 각종 법령은 신설된 국토안보부뿐 아니라 국방부, 법무부, 연방수사국(FBI), 주 정부 등 정부기관 곳곳에서 발효되고 있다.
25일 발족한 국토안보부는 인터넷상의 대화 내용을 무작위로 감시하고 사용자가 온라인상에서 어떤 행동을 하는지를 파악해 사용자의 실제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
각종 도청, 감청 권한은 테러를 일선에서 감시하는 FBI에 집중돼 있다.
FBI는 6월 비밀요원들이 범죄행위에 대한 증거 없이도 공공집회나 정치·종교 집회에 참석하고 인터넷 사이트를 뒤지는 등 감시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새 지침을 발표하고, 산하 56개 지부가 본부의 승인 없이도 테러수사에 착수할 수 있도록 했다.
최근 30년 만에 가장 막강한 권한으로 평가되는 이 지침은 1976년 에드거 후버 당시 국장이 흑인 과격단체, 베트남전 반전운동가 등을 감시하기 위해 가동했던 '코인텔프로'라는 비밀첩보제도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테러용의자들의 가택 수색, 전화 도청 및 인터넷 추적 외에 테러리스트 비호세력에 대한 기소권과 용의자들의 돈세탁 단속 권한을 내용으로 하는 테러퇴치법이 탄생했다. 그 동안 FBI는 사생활 침해 여부로 논란을 빚어온 인터넷 감청시스템 '카니보어(Carnivore)' 를 무선인터넷 이메일 감청으로까지 확대하고 있다는 의혹을 사왔다.
15일에는 국방부 내 첨단연구계획국(ARPA)이 테러단체들의 비밀활동을 탐지하기 위해 수십억 건에 달하는 전자 의사소통 데이터를 샅샅이 뒤질 수 있는 '종합정보인지'(TIA) 시스템을 개발 중이라고 밝혀 거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밖에 특별 연방 항소법원인 외국인 정보감시 재심법원은 18일 법무부에 형사사건과 관련해 수집한 도청자료를 폭 넓게 사용하는 권한을 인정했다. 캘리포니아, 뉴욕, 애리조나, 워싱턴 등 주 정부 역시 주 경찰이 법원으로부터 임의승인을 받아 범죄용의자가 사용하는 전화 및 이메일, 인터넷 사이트를 도청·수색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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