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외교의 풍운아였던 헨리 키신저(79) 전 국무장관이 노구를 이끌고 워싱턴 중앙 정계에 돌아왔다. 키신저는 27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에 의해 9·11 테러 공격을 미 행정부가 예방하지 못한 원인을 조사하는 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부시 대통령은 "키신저 박사는 미국의 가장 뛰어나고 존경받는 공무원 중 한 사람"이라며 인선 배경을 밝혔다.키신저는 이에 대해 "무시무시한 고통을 당한 피해자들에게 특별한 책임감을 느낀다"는 일성으로 답했다. 그는 특별위원회 활동과 관련해 "우리는 어떤 제한도 받지 않으며, 제한을 수용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해 중립적이고 공정한 조사를 약속했다.
■엇갈리는 평가
냉전 시대를 풍미한 외교 전략가가 21세기에 새롭게 데뷔한 데 대한 시각은 엇갈린다. 그가 핵심에 있었던 냉전기 미국 외교가 그만큼 비밀스럽고 이중적인 잣대 위에서 수행됐기 때문이다. 긍정론자들은 그의 지적 능력과 원대한 전략적 안목, 뛰어난 타협·설득력에 찬사를 보낸다.
부정적인 측에서는 그가 지나치게 야심적일 뿐 아니라 원칙 없는 실용주의자, 비밀주의자라며 특별위원회를 이끌 자격이 없다고 주장한다. 심한 경우는 그가 국무장관으로 있던 1973년 중앙정보국(CIA)의 칠레 쿠데타 개입 의혹과 관련해 그를 전쟁범죄자로 지목하기도 한다.
■살아있는 냉전의 역사
키신저는 '살아 있는 냉전의 역사'로 통한다. 1923년 독일 바이에른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38년 나치 치하를 탈출해 뉴욕에 정착했다. 하버드대에서 행정학을 가르치다 존 F 케네디와 린든 B 존슨 대통령 정부에서 국가안보회의(NSC) 및 국무부 자문관으로 일했다.
69∼75년 리처드 닉슨 행정부 때 국가안보 담당 보좌관, 73∼77년 닉슨과 제럴드 포드 행정부 때 국무장관을 지냈다. 이 기간에 그는 특유의 세력 균형 외교를 통해 미국의 패권 확립에 앞장섰다. 71년 중국을 방문해 미·중 데탕트 시대를 열었으며, 북베트남과 파리 평화협정을 성사시켜 73년 노벨 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77년 공직에서 은퇴한 뒤에는 여러 나라의 고문역과 작가, 강연자로 활동해 왔다.
■18개월간 특별위원회 주도
키신저는 앞으로 자신과 민주당 소속 조지 미첼(전 상원의원) 부위원장을 포함해 10명으로 구성되는 특별위원회를 이끌게 된다. 위원 10명은 초당파적 조사를 위해 공화, 민주 양당이 각각 5명씩 지명한다.
부시 대통령 서명으로 이날 발족한 특별위원회는 15일 하원이 9·11 테러 피해의 원인 규명을 위한 특위 창설 법안을 승인하면서 태동됐다.
특위는 앞으로 18개월 내에 조사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특위는 이 기간에 행정부 내 모든 사람에 대해 소환장 발부와 인터뷰 요청권을 갖는다.
키신저는 부시 대통령도 조사 대상에 포함되느냐는 질문에 "모든 사실관계를 파악할 때까지는 조사 여부를 판단하지 않을 것"이라며 원론적인 답변을 했다.
/배연해기자 seapowe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