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김구 선생의 건국이상이 '문화국가'였다는 점은 다소 놀랍다. 식민지에서 벗어나 아직 궁핍하던 시절, 백범은 '부강한 나라'를 가로질러 '문화국가'를 역설했다. 몇 단계 건너뛴 화술이 놀라운 것이 아니라, 항일투쟁과 대조되는 평화주의자의 안목이 경탄스럽다. 흉탄에 좌절된 그의 이상이 새삼 안타깝다.<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강력은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내가>
DJ정부가 임기말에 받은 문화적 점수가 예상 외로 초라하다. '문화의 시대'를 외치며 문화예산 1%시대를 열어, 한류(韓流)열풍에 크게 고무되던 정부의 뒷모습이 보기에 민망하다. EBS의 조사에 따르면 문화 전문가들은 정부의 문화예술 지원결과에 낙제점을 주었다. 문학·미술·음악·영화분야 등의 전문가 326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85%가 부정적 평가를 내렸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 남에게 행복을 준다.' 백범은 이렇게 쉬운 말로 정치의 본질을 설명했다. 문화를 발전시키려면 대통령부터 문화에 애정을 보여야 한다. DJ가 외국을 방문하는 횟수만큼만 직접 공연장이나 영화관, 화랑 등 문화가 태동하고 자라는 현장을 찾아 예술인과 대화를 나누었다면, 문화인들이 그렇게 부정적인 평가를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다른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다.
대선 후보들이 유행처럼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후보들의 문화정책을 분석한 21개 문화예술단체에 따르면 그들 역시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문화에 대한 철학과 이념이 빈곤하고 답변도 추상적이어서, 일반적 수준을 넘지 못했다고 보고되었다. 문화에 대해 명료한 미래상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 어떤 장밋빛 공약도 신뢰하기 어렵다.
21세기를 문화의 시대라고 부르는 것은 문화산업이 다른 분야 못지않게 하나의 큰 국가경쟁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또 국가에 대한 문화적 이미지가 국민의 품위, 상품의 품질 등과 연결되는 지구촌 시대가 된 까닭이다. 가장 앞선 선진국의 국민은 가장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국민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유감스럽게도 다른 문화진흥을 말하기 앞서, 우리의 무분별하고 몰염치한 건축문화를 고발하고 싶다. 국토는 우리 문학과 미술, 음악, 연극, 영화를 잉태하고 성장시키는 공간이자, 반만 년 동안 삶을 꾸려온 겨레의 무대다. 그 무대는 장엄하고 편안하고 아늑하고 활기차고 건강해야 한다. 또한 상심한 사람들이 위안을 얻을 수 있도록 쓸쓸한 풍경으로 남기도 해야 한다.
이런 국토가 개발에 뒤틀리고 파괴되는 것이 우리 문화의 아픈 현주소다. 오래 된 마을이 갖는 안온함은 파괴되고, 계통도 없이 뒤틀린 상업적 건물들이 오직 기이함으로 손님의 시선을 끌기 위해 아우성 치고 있다. 벌판 가운데 고층 아파트와 러브호텔이 들어서고 농촌은 폐자재로 더럽혀지고 있다.
미학이 사라진 국토에서는 낭만과 서정, 꿈의 뿌리 또한 시든다. 길거리마다 난립한 음식점과 끔찍한 간판들처럼 영악한 상업주의만이 판을 친다. 이명박 서울시장의 청계천 복원공약이 지지를 받은 것은 시민이 600년 고도의 흔적을 사랑했기 때문일 것이다. 새 시장이 서울을 온통 공사판으로 만들 듯해도 시민은 기대를 갖고 있다.
아프리카 마을에도, 인디언의 오지 동네에도 전통미학과 인간의 품위를 지켜가는 건축문화가 있다. 오래 된 건물이 없는 도시는 과거를 갖지 않은 인간과 같다고 한다. 우리의 국토개발은 문화유산을 최대한 보존·복원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이제라도 대선 후보로부터 국토를 아름답게 가꾸겠다는 약속을 듣고 싶다.
박 래 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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