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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잃어버린 도시,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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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잃어버린 도시, 서울

입력
2002.1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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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어떤 도시인가? 인구 1,000만이 밀집해 사는 거대도시이다. 그리고 고층빌딩과 최신기계가 있는 첨단도시이며,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러낸 세계도시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또 다른 무엇이 있다. 바로 우리의 역사이며 삶이다.20여년 전 서울에 처음 와서 버스로 고가도로를 지나다가 깜짝 놀랐다. 아래에 교과서에서 본 독립문이, 독립을 위해 청나라의 사신을 영접하던 모화관을 헐고 지었다는 그 독립문이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 아래에, 원래 자리는 자동차에 내어주고 천덕꾸러기처럼 서 있었다. 그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 충격이 우리의 역사적 현재이다. 서울은 600여년 동안 한반도의 수도였다. 지금 그 역사의 묵향은 찾을 수 없다. 국보 제1호 숭례문(崇禮門)은 그 이름조차 빼앗긴 채 남대문으로 고층빌딩에 포위된 채 밤낮으로 경적소리에 시달리며 매캐한 숨만 내쉬고 있다. 보물 제1호 흥인문(興仁門)도 다를 바 없다. 역사 속에 빠져들기 위해서는 고궁으로 박물관으로 가야 한다. 아니면 인사동으로. 삶 속에는 역사와 전통,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다. 다만 화석만이 지난날의 광휘를 희미하게 드러낼 뿐이다. 박제만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다.

1392년 개성에서 건국한 조선은 2년 후인 1394년 한양, 서울로 천도(遷都)하였다. 정도전(鄭道傳)이 중심이 되어 경복궁과 종묘, 사직을 세우고 풍수사상에 따라 청계천을 만드는 등 수도의 모습을 갖추었다. 서울에는 관리, 양반, 양인과 상인 등 많은 사람이 서로의 삶을 어울러 도시를 만들었다. 이런 모습은 몇 차례의 전란을 겪었지만 크게 변하지 않고 지속되었다. 이런 서울은 경제개발을 하면서 크게 달라졌다. 옛 시가지의 모습은 하나 둘 사라지고 거기에는 도로가 났다. 그리고 옹기종기 살아가던 집들이 있던 자리에는 거대한 빌딩들이 버티고 서서 웅장한 자태를 뽐내었다. 역사의 장중미는 저 너머로 사라졌다.

연전 일본 교토(京都)에 갔을 때 놀랐다. 현대도시에 맞지 않게 옛 것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긴카쿠지(金閣寺) 등 전통 사찰이 있는 지역뿐 아니라 도심 한가운데도 옛 가옥과 현대식 건물이 나란히 있었다. 물론 2차대전의 전화(戰禍)를 입지 않은 교토와 몇 차례나 불탄 서울을 그대로 대비할 수는 없지만, 교토에서는 옛 사람의 여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일본에서는 교토의 역사성을 보존하기 위해 법령을 정비하여 건물의 신축과 개량을 억제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근래 서울의 옛 모습을 되찾으려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경복궁을 비롯한 고궁을 복원하고 있다. 청계고가도로를 헐고 물이 흐르는 청계천을 복원하려는 계획도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 청사진에는 서울이라는 역사의 공간에서 희로애락을 나누며 살아온 사람들의 모습이 없기 때문이다. 역사와 자연 속에서 움직이는 우리가 없는 복원은 다시 화석 하나를 더할 뿐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강북지역을 재개발한다고 한다. 신도시처럼 고층아파트로 하늘과 자연경관을 가리는 마천루만 잔뜩 세워질까 두렵다. 600년 역사의 모습을 되찾는 개발이 되어야 한다. 전통과 첨단이 어우러진 그런 시가지로 탄생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나만의 몽상일까? 일부만이라도 역사와 전통과 대화하고 사색에 잠길 수 있는 고즈넉한 거리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다시는 그런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위정자와 시민들이 결단할 때이다.

역사와 조화를 이루며 개발을 해야 한다. 그리고 긴 호흡으로 하자. 광복 50주년을 맞이하여 식민지의 상징인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하고 임시 중앙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중앙박물관 건립은 계속 미뤄지고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 그러나 피할 수도 있다. 또 서울이 개발되던 40∼50년 전보다는 사정이 훨씬 좋다. 철저한 계획과 이를 끝까지 관철하려는 정책 의지가 필요하다.

정 긍 식 서울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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