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신화에서는 고대의 우리나라도 변방의 신기한 나라였다. 우리나라는 중국의 동쪽에 위치해 있고 종족적으로는 동이계(東夷系)에 속하기 때문에 대개 이 두 가지 요소를 바탕으로 한 신화자료에서 우리나라와 상관된 언급을 찾아볼 수 있다.후한(後漢) 시기에 이루어진 오래된 자전(字典)인 '설문해자(設文解字)'를 보면 동이 곧 동쪽에 사는 인종은 대인(大人)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여기서의 대인은 체구가 비교적 크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성품이 호탕하고 관대하다는 뜻도 함축한다. '설문해자'에서는 계속해서 이 동이 종족의 풍속이 어질고, 어진 사람은 오래 살기 때문에 이 지역에 군자(君子)들이 사는 죽지 않는 나라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바로 이 군자들의 나라 곧 군자국(君子國)은 중국신화에 의하면 동쪽 바다 바깥에 있는 나라이다. 이 나라 사람들은 옷을 단정히 입고 칼을 찼으며 짐승을 잡아먹고 살았는데 무늬가 아름다운 호랑이 두 마리를 곁에 두고 부렸다. 아울러 그들은 모든 일에 사양하기를 좋아하여 좀처럼 다투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이 나라에는 무궁화 꽃이 지천으로 피어 사람들은 그것을 먹기도 하였다.
우리 선인들은 이 이야기가 태고의 우리나라를 묘사한 것으로 여겼다. 우리나라를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나 근역(槿域) 곧 무궁화의 땅 등으로 불렀던 일들은 모두 '산해경(山海經)' 해외동경(海外東經)에 실린 군자국에 관한 이 짤막한 이야기에 오래된 근거를 두고 있다. 이렇게 보면 우리의 국화(國花)가 무궁화인 것도 이 신화내용과 무관하지 않다. 최남선(崔南善) 같은 학자는 호랑이를 곁에 두고 부린다는 표현이 산신령 곁에 호랑이가 있는 산신도(山神圖)의 정황과 흡사한 것으로 미루어 군자국 이야기가 고대 한국의 민속이나 종교를 반영한 것으로 생각했다.
고대에 우리 민족의 활동무대인 만주지역에 세워졌던 나라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북쪽의 먼 변방에는 숙신국(肅愼國)이라는 나라가 있는데 여기에는 웅상(雄常)이라는 기이한 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이 나무는 신통하게도 먼 중국 땅에서 성인이 출현하여 황제로 즉위하면 가죽이 솟아 평소 옷도 없이 지내던 숙신국 사람들은 이 때에야 비로소 옷을 해 입을 수 있었다 하니 중국 황제의 덕이 얼마나 위대한지 이 나무가 입증했던 셈이다. 이 신화에는 이미 중국 중심의 이데올로기가 스며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과거 숙신국의 영역으로 추정되는 송화강(松花江) 하류 지역에는 지금 혁철족(赫哲族)이라는 소수 민족이 살고 있는데 이 지역에는 자작나무가 많아서 옷 그릇 배 등 거의 모든 생활 도구를 자작나무 껍질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숙신국의 웅상나무 신화는 아마 이 지역의 고대 자작나무 문화를 반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숙신국 부근에는 불함산(不咸山)이라는 높은 산이 있고 이 산에는 날개가 넷 달린 비질(蜚蛭)과 짐승의 머리에 뱀의 몸을 한 금충(琴蟲)이라는 이상한 동물들이 살았다. 불함산은 곧 백두산이다. 비질과 금충이라는 동물들의 정체에 대해서는 지금 알 길이 없다.
북쪽의 먼 변방에 숙신국과 더불어 있는 나라로 호불여국(胡不與國)이 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신농(神農)의 먼 후예로 기장을 먹고 살았다. 정인보(鄭寅普) 최남선 등의 학자들은 이 나라가 부여(夫餘)일 것으로 추정한 바 있다. '불여'와 '부여'의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부여를 계승한 고구려의 고분 벽화에는 사람의 몸에 소의 머리를 한 신농이 그려져 있기도 하다.
'산해경' 해내경(海內經)에는 이들 나라 이외에 확실히 고대 한국을 지칭하는 조선(朝鮮)에 대한 언급이 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 그것이다. "동해의 안쪽, 북해의 모퉁이에 조선이라는 나라가 있다. 하늘이 그 나라 사람들을 길러냈는데 그들은 물가에 살며 남을 아끼고 사랑한다(東海之內, 北海之隅, 有國名曰朝鮮. 天毒其人, 水居, 人愛之)" 이글은 아마 고조선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일 것이다. 고대 중국인의 눈에 비친 우리 한국인의 모습은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민족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지금 과연 그러한가?
그러나 대부분 변방 민족에 대한 중국신화의 묘사는 기이한 용모나 기인한 습속을 지닌 이방인으로 그려진다. 동쪽 바다 바깥의 큰 섬에는 모민국(毛民國)이라는 나라가 있는데 이곳의 사람들은 키가 작고 온 몸에 돼지털이나 곰털 같은 털이 나 있었다. 이들은 굴 속에 거주하여 옷을 입지 않았다. 학자들 중에는 이들이 일본의 북해도(北海道)에 살고 있는 아이누족이 아니었던가 추측하는 사람도 있다.
남쪽 변방의 거친 땅에는 역민국(□民國)이라는 나라가 있는데 이들의 생활 또한 평범치 않았다. 이들은 성이 상씨(桑氏)이며 주식은 기장이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또 하나의 중요한 먹거리가 있었으니 그것은 역(□)이라고 부르는 이상한 동물이었다. 역은 단호(短狐)라고도 하는데 우리 말로는 물여우로서 양자강 이남의 계곡에 살았다. 이 동물은 크기가 세 치 곧 10㎝밖에 안되나 자라 같은 생김새에 특이하게도 주둥이가 활 모양을 하고 있어서 모래를 입에 물고 화살처럼 쏘아댈 수가 있었다. 이 모래에 사람이 맞으면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 일설에는 사람의 그림자를 향해 모래를 발사해도 병을 일으킬 수가 있었다 하니 매우 위험한 동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동물의 천적이 역민국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물여우를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활로 쏘아 잡아먹는 것을 즐겼다.
변방의 종족들 중에는 신성한 능력을 지닌 사람들도 있었다. 가령 서쪽 바다 바깥에 있는 무함국(巫咸國) 사람들이 그러하였다. 무함은 황제(黃帝) 혹은 요(堯) 임금 때의 용한 무당으로 무당의 원조격인 사람이었다. 무함국은 바로 이 무함의 뒤를 이은 무당들이 조직한 나라였다. 이 나라의 한 가운데에는 등보산(登 山)이라는 신성한 산이 있는데 무당들은 오른 손에는 푸른 뱀을, 왼손에는 붉은 뱀을 쥐고 이 산을 통해 하늘을 오르락내리락 하였다. 말하자면 이 산은 하늘과 땅을 잇는 통로인 셈이다. 이러한 산을 천제(天梯) 곧 하늘 사다리라고 부르는데 무당이 하늘의 뜻을 받들어 지상의 사람들에게 알리거나 그들의 소망을 하늘에 전하는 상하소통의 장소였던 것이다. 고대 동북아시아에서의 산악숭배 관념은 이처럼 산을 천상과 지상의 매개처로 여겼던 샤머니즘과 관련이 깊다.
서쪽 변방에 있는 수마국(壽麻國) 사람들도 기이한 자질을 타고난 사람들이었다. 이 고장은 너무나 뜨거워서 보통 사람들은 타죽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수마국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살았는데 이상한 것은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 서 있어도 그림자가 없었고 크게 외쳐도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한다. 한낮에도 그림자가 없다는 말 곧 백일무영(白日無影)이라는 표현은 후세에 불사의 존재인 신선의 비범함을 말할 때 자주 사용된다. 신선은 수련에 의해 몸이 보통 사람과 같지 않아 한낮에도 그림자가 없고 물에 들어가도 젖지 않으며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는다 하는데 수마국 사람들은 아마 이런 조건들을 구비한 특이한 인종이었던 듯 싶다. 그러나 수마국에 대한 현실주의적인 해석은 그곳이 중국보다 훨씬 남쪽, 적도에 가까운 지역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학자는 수마의 발음에 착안하여 수마국이 오늘날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 섬일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중국신화에 표현된 중국의 변방에 사는 이상한 인종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신화에서는 그들 하나 하나를 모두 독립된 나라로 말하고 있지만 사실 씨족이나 부족 단위의 크고 작은 부락을 의미할 것이다. 우선 그들 대부분의 비정상적인 체형이나 기이한 행태는 문명국을 자부하는 중국의 시각에서 그려진, 주변부 종족에 대한 희화(戱畵)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움베르토 에코는 서구인의 여행기나 박물지(博物誌), 백과사전 등에 묘사된 기괴한 이방인들은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가 아니라 정상적인 서구인을 위해 주변에 마땅히 존재해야 할 비정상적인 인종으로서 상상된 것뿐이라고 말한 바 있다. 우리는 중국의 전통적인 중화주의(中華主義)가 주변을 타자화하는 과정에서 그러한 심리가 작동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주변부 인종에 대한 폄하는 그들 기형적인 존재의 선조가 대개 중국 중심부에서 추방된 사람, 반역자, 죄인 등으로 설정되어 있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사실 진정한 신화의 세계에서는 인간과 짐승, 정상인과 비정상인의 차별이 없다. 그곳은 모두가 화해롭게 공존하는 세계이다.
그러나 이 신화의 세계도 중심의 이데올로기가 침투하면 중심과 주변의 갈등의 장소로 변모한다. 우리는 이들 기형적 존재들을 별쭝난 인종으로서가 아니라 인간 삶의 다양한 모습으로 긍정하는 포용적인 관점을 지녀야 한다. 한편 종족적 편견이 개입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신화에서의 수많은 변방 인종들에 대한 묘사는 우리로 하여금 상상력의 자유로움과 기발함을 만끽하게 한다. 정말 인간의 상상은 어디까지 가능할까. 중국의 먼 변방에 관한 신화는 이 물음에 충실히 답변해준다.
글 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그림 서용선 서울대 서양화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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