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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띄우는 편지

입력
2002.1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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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래플스시티 시민 전쟁기념관 앞에는 젓가락 네 개가 모인 형상의 탑이 있습니다. 일본이 과거 싱가포르를 점령했을 때 사망한 영혼들을 기리며, 중국 인도 말레이 유럽 등 싱가포르를 이루는 4개 민족을 상징하는 구조물입니다.싱가포르는 분명 여러 민족이 어울려 살아가는 국가입니다. 그런데 속을 뜯어보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우선, ‘리틀 인디아’는 주로 일요일에만 붐빕니다. 고향냄새를 맡으러 오는 인도인들은 주로 가정부나 노역자들이어서 휴일이 아니면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곳 대형 전자상가는 시내 유명 쇼핑센터에 비해 20% 저렴하지만 싱가포르인은 좀처럼 찾지 않습니다. 입구에 도난을 막기 위해 설치된 ‘소지품 보관대’가 기분나빠서일까요. 아뫃든 이 구역은 ‘질서국가’싱가포르의 격에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주요 상점의 주인은 모두 중국인입니다.

오차르로드의 대형 백화점 ‘다카시마야’는 주말이면 필리핀 사람들로 붐빕니다. 이들도 가정부나 노역을 하는 사람들이지요. 하지만 쇼핑은 좀처럼 하지 않고 주변에서 친구를 만나 산책을 합니다. ‘쇼핑 천국’은 부유한 내국인이나 관광객들만의 이야기이지요.

“싱가포르에서는 수입의 5분의 1 정도면 외국인 가정부를 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가정부 시스템’에 익숙해져 어른들이 시키는 심부름을 좀처럼 안해요. 큰일입니다.” 일정 내내 가이드를 맡았던 말레이계 중국인 조이 닌(38)씨의 말입니다.

반면 차이나타운은 활기와 자신감이 넘칩니다. 중심가 ‘헤리티지 센터’에서는 초기 정착기 , 자신들이 일구어냈다는 눈물과 땀의 역사를 우리돈 1만원 남짓한 입장료까지 받으며 자랑스레 설명합니다.

싱가포르의 ‘외국인 아닌 외국인’들은 그렇다고 불만을 표출하거나 소동을 피우지는 않습니다. 그저 자신들의 처지를 인정하고 조용히 다른 삶을 살 뿐이지요. ‘돈이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는 씁쓸한 현실을 이곳서도 느꼈습니다.

양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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