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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제도가 조장하는 불법체류

입력
2002.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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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금공장에서 일하다 손을 다쳤습니다. 병원비 달라 하자 당장 그만 둬, 합니다. 그럼 월급이나 주세요, 했더니 돈 없어 다음에 와, 합니다. 공장장님 월급 좀 받게 해 주세요, 하고 호소한다고 막 때립니다. 기숙사로 도망쳐 숨었더니 쇠꼬챙이로 문을 열고 들어와 또 때렸습니다. 친구들이 말리자 칼로 찌르려고 해, 피하다 문 밖으로 떨어져 더 크게 다쳤습니다."'대∼한민국' 함성이 지축을 흔든 월드컵 4강전 날, 방글라데시 사람 자한길 씨는 안산 외국인 노동자센터를 찾아 이렇게 호소했다. 그런 사람이 너무 많아 외국인 노동자센터가 생겼을 정도다. 임금을 안 주려고 불법 체류자로 고발하는 회사까지 있어 많은 외국인이 무관심의 그늘에서 울고 있다.

불법 체류 외국인 가운데 3년 미만 체류자 10만 7,000명의 강제출국 시한을 1년 유예한 엊그제 정부조치는 고육지책으로 이해할 만 하다.

지난 7월 26만 명에 가까운 불법 체류자들을 한꺼번에 출국 시킨다는 방침이 발표된 이후, 그들이 단속을 피해 잠적해버려 중소기업마다 극심한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국가경제야 어떻게 되건 법대로 하겠다면 몰라도, 공장을 닫아야 할 극한상황을 외면만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유예를 해주는 대신 10만 명의 외국인력을 조기 도입하겠다는 것은 무언가. 그 중 5만 명은 이른바 취업관리제라는 형식으로 불러들일 재중동포 등이고, 나머지 5만 명은 산업연수생 신분이다.

산업연수생은 도입인원이 두 배로 늘고, 지금까지 없던 농축산업과 건설업종까지 추가되었다. 이 제도가 신 노예제도나 다름없다고 폐지를 권고한 인권위원회와 노동단체 인권단체의 주장이 무참하게 묵살된 셈이다.

장기간 불법 체류자들을 모두 내보내고 그만큼 새 인력을 들여오겠다는 결정은 종기의 근을 놔두고 언저리만 치료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새로 들어올 사람들이 떠날 날이 오면 똑 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에 오래 체류한 사람들을 골라 내보내고 새 인력을 받는 것은, 숙련자를 해고하고 미 숙련자를 채용하는 결과가 된다. 기술 숙련도 뿐만 아니라, 우리말 소통력과 적응력도 그만큼 떨어져 이중삼중으로 손해다.

외국인 근로자를 불러들였다가 얼마 안되어 불법 체류라고 내쫓아버리는 소동의 반복은 산업연수생이라는 희한한 제도 탓이다. 한마디로 정부가 외국인 근로자의 불법체류를 조장하고, 고용주와 관리업자는 그들의 임금을 착취하는 부끄러운 제도다.

한국과 일본에만 있는 이 제도는 일정기간 산업기술을 연수한 뒤 짧은 기간의 취업을 인정하는 형식이다. 기술을 배울 수 있으니 열악한 근로조건을 참고 견디라는, 노골적인 임금착취 의도를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명분은 그럴 듯 해보이지만 그들은 한국인이 기피하는 3D 업종의 단순노동에 종사하는 대가로 월 30∼40만원의 임금을 받고 있다.

용돈 수준의 임금에 장시간 노동, 인권유린까지 밥 먹듯 하고 있어 1994년 제도 도입 첫해부터 반 이상의 연수생이 배정된 일자리를 이탈하고 있다.

그 결과 공식 연수생 5만 명보다 불법 체류자가 몇 곱절 많아졌다. 제도가 불법체류를 조장하는 것과 다를 바가 무언가.

해결책은 근로기준법 적용을 못 받는 산업연수생 제도를 고용허가제로 바꾸는 길 뿐이다. 중소기업인 단체는 "그렇게 되면 인건비가 너무 올라 기업이 망한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외국인을 그렇게 학대할 건가.

외국에서는 자국인의 80% 수준으로 외국인 근로자 임금을 정해 법으로 보호하고 있다. 스스로 인권국가를 자처하는 나라가 외국인 학대 제도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산업연수생 제도를 고집하는 건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문 창 재 논설위원실장 cjm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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