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도덕과 사회성은 유전자의 명령인가? 영국의 언론인 매트 리들리가 쓴 '이타적 유전자'라는 책이 제기하는 질문이다. 이 책에 인용된 영국의 전 총리 마거릿 대처의 다음과 같은 주장이 흥미롭다. "사회 같은 것은 없다. 하나하나의 남자와 여자가 있으며 그리고 가족이 있을 뿐이다."대처의 우익 성향을 싫어하는 사람은 위 발언을 비웃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볼 건 아니다. 리들리의 다음과 같은 해설에 동의하긴 어렵지 않다.
"그녀가 주장하는 핵심은 인간의 근본적인 기회주의성을 인식하지 못하면 정부가 대의만을 추구하는 성인들이 아니라 이기적인 인간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게 된다는 것이다. 정부란 자신들을 제외한 나머지 국민들의 희생 위에 자신들의 권력과 보수를 늘리기 위해 예산을 확대하는 관료들과 이익집단의 도구이다. 정부는 사회적 이익을 제공하는 공평 무사한 기구가 아니다. 그녀는 이상적인 정부를 비판한 것이 아니라, 정부라는 것이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부패를 비판한 것이다."
대학 수능시험 이후 쏟아져 나온, 한국형 입시전쟁의 참상을 다룬 지식인들의 수많은 칼럼들을 읽으면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바로 위와 같은 시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렇게 한결같이 '입시제도' 탓을 하는 걸까? 학벌주의, 즉 서울대를 정점으로 하는 기존의 대학 서열구조가 문제의 핵심인데도 그걸 지적하는 지식인은 드물었다.
이른바 명문대학 교수들은 나라를 생각하는 애국자들일 것이라고 믿는 걸까?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나라이기에 앞서 자기 대학의 발전이라는 걸 믿지 못하겠다는 걸까? 그러니까, 우리 모두는 다 전체를 생각하는 선한 마음을 갖고 있으며 오직 입시제도의 방법만이 문제라는 걸까?
이런 천진난만한 시각은 한국 정치의 모든 문제를 정치권에만 돌리는 정치평론에도 만연돼 있다. 많은 정치평론이 국민은 정치개혁을 원한다는 걸 전제하고 있는데, 그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린다. 국민이 정치개혁을 원하긴 하지만, 그것보다 더 원하는 게 있다는 걸 반드시 밝혀야 한다. 그건 바로 자기 지역의 이익이다. 그 이익은 정서적인 것일 수도 있다.
유권자들은 나라와 국민 전체를 생각하는 선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정치인이나 관료 못지않게 이기적 탐욕으로 가득찬 사람들이기도 하다. 국민을 성역과 금기로 모시면서 국민에게 아첨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 인간은 '이기적 유전자'와 '이타적 유전자'를 동시에 갖고 있다. 사회제도와 정책은 '이타적 유전자'를 북돋우고 '이기적 유전자'가 적정 수준에서 발휘될 수 있게끔 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도 인간의 어두운 면을 냉철하게 직시하고 지적하는 건 꼭 필요한 일이다.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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