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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어디에요?/ "은밀한 곳"서 벌어지는 다양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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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어디에요?/ "은밀한 곳"서 벌어지는 다양한 삶

입력
2002.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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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서는 화장실에 갈 때 "손을 씻으러 간다"고 말을 한다. '볼 일'은 간접 화법으로 말을 해야 하는 부분이다. 반면 중국여행을 다녀온 이들이 질겁하는 곳은 바로 공중화장실이다. 매우 '사적인 공간'이라는 개념을 갖고 있는 화장실에서 '볼 일'을 공유한다는 것은 차마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화장실에서 '볼 일'만 보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그곳에서 아이를 낳고, 사과를 먹기도 하고, 총을 숨겨두기도 한다. 공중화장실을 이용하는 이들은 그 곳에서 상대방의 건강을 묻기도 하고, 농담으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삶이란 이렇게 화장실에서도 이뤄진다.'화장실, 어디에요?'(감독 프루트 챈)는 부산 베이징 뉴욕 캘커타 홍콩에 살고있는 이방인들의 이야기이다. 베이징의 한 공중화장실에 버려져 한 할머니에 의해 키워진 동동(아베 츠요시)은 '화장실의 신'이란 별명을 갖고 있다. 아프리카, 이탈리아인이며 중국에 살고 있는 여러 친구들과 화장실에서 키득거리는 것이 그의 취미. 할머니가 암 선고를 받자 그는 '명약'을 구하기 위해 먼 길을 떠난다. 동동이 도착한 곳은 부산.

부산에는 횟집을 하는 부모의 잔심부름을 하며 사는 김선박(장혁)이 살고 있다. 그는 자신을 '해산물'이라고 주장하는 소녀(김양희)를 정성스럽게 보살핀다. 불치병을 앓고 있는 친구 조(조인성) 역시 '명약'을 구하기 위해 중국으로 길을 떠난다. 부산에서 명약을 찾는데 실패한 동동은 뉴욕으로 가 살인청부업자 샘(이찬삼)의 죽음을 캠코더에 담게 되고, 이 영상을 명약을 찾아 헤매던 샘의 여자친구에게 전한다.

인간에게 소변과 대변을 규칙적으로 보는 것이 필연이듯, 죽음 역시 피할 수 없다. 때문에 인간은 어쩔 수 없이 명약에 집착한다. 인간의 생로병사에 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는, 그러나 주제의 무게를 꽤 발랄한 유머로 털어내 버리는데 성공했다. 화장실에 버려진 아이를 건져내는 할머니의 손에 쥐어져 있는 것은 작은 아기 인형. 이 비현실적인 상징은 프루트 챈의 발랄한 영화적 상상의 증거. 화장실 바닥에 떨어진 대소변의 시선으로 사람들을 올려다보는 카메라의 움직임도 꽤나 충격적이다.

영화의 전개가 발랄했던 데 비해 마지막 부분은 지구의 오염을 걱정하는 심각한 메시지를 던지며 끝맺는다. 수많은 사람의 끝없는 행렬은 진정 더러운 것은 인간의 배설행위가 아니라, 환경과 이웃을 아무렇게나 생각하는 이기심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디지털 화면이 거칠지만 새로운 느낌으로 해석될 여지가 많은 반면 여러 번 더빙을 거듭해 대사가 입 모양과 맞지않은 점은 아쉽다. 한국(KTB네트워크, 디지털 네가 등)이 12억원의 제작비를 대고, 아시아 스태프들과 함께 작업한 우리 영화다. 29일 개봉. 12세관람가.

/박은주기자 jupe@hk.co.kr

● 김선박 역 장 혁

"프루트 챈 감독과의 대화는 이런 식이다. 그가 밥 먹는 시늉을 하며 '응?'하고 물으면 비슷한 자세를 보이면서 '예' 한다. 말이 안 통하니 현장에서 과묵할 수 밖에 없었다. 때문에 감독 틀 안에 갇히지 않는 연기를 보일 수 있었던 것 같다."

해산물 소녀를 정성스레 돌보는 역할을 맡은 김선박 역의 장 혁(26). 프루트 챈 감독이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쓴 것처럼 영화에서 그는 '정글 쥬스'나 '명랑소녀 성공기'의 장 혁처럼 자연스럽다. 영어로 길을 묻는 질문에 "고(Go), 쭉 고(Go)"라고 말하는 대목에 이르면 그의 '애드립'도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다.

"감독을 처음 만났을 때는 좀 실망했다. '메이드 인 홍콩'에서 방황하는 홍콩의 젊은이를 그처럼 사실적으로 그렸던 감독이 회사원처럼 평범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김선박은 한 쪽 다리가 부자연스런 장애인. "스무 살이 넘어서도 집의 허드렛일이나 돕고, '해산물'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천진한 인물이기 위해서는 일상에서 뭐가 '결핍'이 필요할 것 같아" 장 혁 스스로 그렇게 설정했다.

'명랑소녀 성공기'로 대만에서 인기가 폭발하고 있고, 이 영화가 내년 홍콩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될 가능성도 커 장 혁이 또 다른 한류의 주역이 될 가능성이 무척 높아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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