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금융권의 최대 화두는 프라이빗뱅킹으로 대표되는 부자마케팅이다. 예금이 많고, 빌린 돈도 잘 갚아 수익을 많이 내주는 부자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이자·수수료를 획기적으로 우대해주고, 세무·재테크는 물론 자녀유학, 골동품 투자 등도 무료 상담해준다. 은행원들이 정기적으로 골프접대도 하고, 그들만을 위한 특별한 호화 점포도 차려놓고 있다.'고객=돈'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수고객이 특별 대접을 받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하지만 씁쓸한 사실은 부자마케팅의 이면에는 부자고객에게 많은 혜택을 주기 위해 상대적으로 서민 고객에게 불이익이 돌아가는 차별적 구조가 감춰져 있다는 점이다.
시중은행의 타행 송금 수수료 체계를 보자. VIP고객들은 송금 액수와 상관없이 수수료가 면제된다. 그나마 인터넷을 사용할 줄 아는 중산층 고객들은 건당 500원을 내면 되지만, 부자도 아니고 인터넷 사용도 못하는 그야말로 서민들은 100만원 넘는 돈을 다른 은행에 보내려면 4,000원을 내야 한다.
카드사들은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현금서비스 부문에서는 수수료 폭리를 취하면서도, 신용카드로 물건을 많이 사는 고소득층에게는 캐시백, 포인트제, 경품제공 등의 출혈 경쟁을 벌이며 적자를 내고 있다. 부자고객에게 각종 무이자 서비스와 선물을 제공하는 데 따른 손실을 서민들에게서 번 돈으로 보전하는 셈이다.
미국의 경제평론가 로버트 매닝은 최근 펴낸 '신용카드 제국'이라는 책에서 "신용카드는 더 이상 거래의 편리함을 높여주는 도구가 아니라, 저소득층의 부를 고소득층으로 이전시켜 부의 역(逆) 재분배를 촉진하는 수단이 돼버렸다"고 적고 있다.
사기업인 금융기관에 분배의 형평성까지 요구할 수는 없지만, 서민들을 부채의 늪으로 내몰면서까지 부자마케팅에 나서는 행태는 분명 문제가 있다.
유병률 경제부 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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