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은 이번 대선에서도 역시 최대 승부처다. 전체 유권자 3,500여만명의 45% 가까운 약 1,600만명의 유권자도 그렇지만 지역 대결에서 비교적 거리가 먼 중립 지대이기 때문이다. 25일 새벽 일기 시작한 후보단일화 바람이 가장 뚜렷한 것도 바로 수도권이다.수도권의 판세 조짐은 단풍(單風)이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에게 얼마나 순풍이 되고 있는가를 짐작케 할 만하다. 이날 가정과 직장, 거리의 주요 화제는 단연 '단풍'이었다. 그 동안 젊은층을 중심으로 선거에 무관심했던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선거에 관심을 갖게 된 것 자체가 노 후보에게는 이익이 되리라는 게 일반적 해석이다.
그러나 '이회창(李會昌) 대세론' 또한 한풀 기세가 꺾였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강한 흐름으로 살아 있다. 50대 이상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안정적 지도자가 낫다"는 의견이 무성하다. 정치권에서조차 "단풍이 태풍이 될 것"이라는 의견과 "조만간 단풍이 끝날 것"이라는 전망이 엇갈리고 있는 이유다.
단일화 바람 디자이너 임모(33·여·서울 서교동)씨는 "특별히 노무현을 좋아하는 것은 아닌데 투표를 한다면 그를 찍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대학원생 이범준(31)씨도 "이 후보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아서 단일화의 효과가 적지 않다"고 분석했다. 그는 "바람의 지속 여부는 노 후보가 앞으로 TV 토론 등에서 어느 정도 유권자에게 다가서느냐에 달려 있다"고 내다 봤다.
그러나 서울 강남에 사는 김홍래(29·회사원)씨는 "노 후보로의 단일화가 잘됐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그래도 나는 투표소에 갈 것 같진 않다"고 말했다. 국민통합21 정몽준(鄭夢準) 대표를 지지했다는 오재익(28·무직·서울 도봉구)씨도 "아쉽지만 정 대표가 노 후보를 지지한다니 노 후보를 찍을까 하는 생각이지만 막상 투표하러 갈지 어떨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노 후보로서는 단일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투표 참여에 소극적 유권자를 어떻게 끌어 안느냐를 고민해야 할 듯하다.
단풍이 과연 언제까지 위력을 발할지는 누구도 선뜻 장담하지 못했다. 한나라당의 한 핵심 관계자는 "후보단일화는 정치 이벤트라는 한계를 뛰어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단풍의 효과가 제한적이고, 지속력도 그리 길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반면 서울의 한 민주당 지구당 사무국장은 "'이회창 대세론'과 '이회창 불가론'이 공존했지만 후보단일화로 불가론이 큰 힘을 얻고 있다"며 "호남 출신 가운데 정 대표를 지지했던 사람들이 노 후보 쪽으로 돌아서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회창 대세론 증권회사에 다니는 성종율(39·서울 동작구)씨는 "후보 단일화가 신선하게 여겨지긴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이 후보를 이기기 위해 손잡은 것"이라며 "지금까지의 판세를 뒤집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 파주시에 사는 김진성(43·번역가)씨도 "후보 단일화는 정치쇼라는 생각이 든다"며 "국가경영에 대한 비전, 경륜 등을 따져 투표할 작정"이라고 말했다. 일산 신도시 주민인 주부 김모(47)씨는 "노무현이 단일후보도 되고 해서 괜찮은 것 같은데 당이 마음에 안 든다"며 "그래도 나는 되는 사람을 밀어야 한다는 쪽"이라고 말했다.
인천 남구 주안동의 한 교회에서 목회일을 하는 목사 김모(58)씨는 "지금은 나라를 안정감 있게 이끌어 갈 지도자가 필요한 때"라며 이 후보 지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경기 일산에서 주유소를 경영하는 이모(34)씨는 "사업상 여러 사람을 만나는데 30대 중반만 넘으면 대부분 이 후보 지지자들이다. 나도 노 후보는 대통령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기 성남에 사는 황태섭(34·회사원)씨는 "개인적으로는 정 대표가 단일후보가 됐으면 바람이 거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단일화했다고 지지 후보를 바꿀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부동층의 향배 후보 등록일이 이틀 앞으로 다가오고, 양강 대결 구도가 굳어졌지만 부동층은 아직 줄어 들지 않았다. 보험업을 하는 정모(33·인천 부평구)씨는 "투표할 생각이 없기 때문에 단일화가 되든 말든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유혜종(28·여·회사원)씨는 " 투표는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누굴 찍을지는 결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투표일 직전까지 떠다닐 것으로 보이는 이 같은 선거 무관심층의 표가 단풍에 휩쓸릴지, 대세론에 휘말릴지는 아직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최성욱기자 feelchoi@hk.co.kr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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