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북지역의 재개발 논란이 한창이다. 서울은 1970년대부터 정치인과 일부 건설·부동산 업자의 이해관계에 따른 마구잡이식 개발을 해왔다. 강북 개발은 주민과 환경을 존중하는 도시개발의 새로운 모델을 보여주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이 곳은 수도 서울의 정체성, 그 정신을 갖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강북개발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도시계획에 따른 시민의 움직임을 감안해야 한다. 또 투기 조절을 위해 억제책과 유인책을 적절히 선택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억제책은 대중적 인기를 얻기 어렵고 유인책은 재정을 남발하게 된다.
2년 전 서울 길음시장 인근에는 오래된 집들이 밀집해 있는 주택지구가 있었다. 하지만 새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옛 집들이 송두리째 사라졌다. 이런 식으로 서울에서 옛 정취가 남아 있는 구역은 살아 남지 못하고 있다. 인사동을 볼 때도 안타깝다. 건물은 높아만 가고 거리에는 가짜 한식당과 'MADE IN THAILAND'가 적힌 한국기념품가게, 최신형 갤러리로 즐비하다. 1,000년의 고도라는 경주 역시 마찬가지다. 도심 정비가 형편없다. 5∼6년이 지나면 다른 번잡한 도심들과 다르지 않게 될 것 같다.
프랑스에는 엄격한 규제가 있어 오래된 역사적 건물 인근 몇 m 이내에 있는 건축물의 경우 완전한 외부개조는 불가능하다. 한국에 비슷한 규제가 있다면 청와대 주변이나 그린벨트 정도일 것이다. 강북개발이 강남이 그랬던 것처럼 도시의 새로운 재앙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러한 규제가 보편화되고 강화돼야 한다. '유인'은 옛 건물을 무너뜨리고 그 위에 돈벌이를 위해 아파트나 빌라를 짓는 사람들이 아니라 전통적 건물을 개조하고 보존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져야 한다.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여러 분야의 당사자들이 협력해야 한다. 정치인, 시민·사회단체, 전문가 등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도시전문가, 건축가, 설계자 뿐만이 아니라 사회학자, 심리학자, 조경학자 등도 포함되어야 한다. 이는 단발성으로 급조된 정책과는 달리 매우 느리고 섬세한 과정이 될 것이다. 하지만 개발이 신속하게 이루어질수록 우리는 그만큼 많은 의구심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균형 잡힌, 그리고 조화로운 개발을 위한 진정한 고민에서가 아니라 유권자의 표를 의식한 정치적 고려에서 나온 것이 아닌지 하고 말이다.
에릭 비데 프랑스인 홍익대 불문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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