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밑이 다가오면서 '술 권하는' 모임이 이래저래 늘어나고 있다. 평소 술자리가 잦은 사람도 버거운 시절이지만 인간관계가 주로 술로 표현되는 현실여건상 송년회 등의 자리를 피하기 쉽지않다. 널리 알려진 대로 과음은 간 질환을 일으키는 첫번째 원인이다. 전문가들은 "술에 취하지 않는 기적과 같은 비법은 없지만 건강을 배려하는 음주법은 분명히 있다"며 "다 아는 요령이라고 해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빈 속에 술을 마시지 마라
음주 직전에 우유나 간단한 음식을 먹어둬야 한다. 빈 속에 술을 마시면 위벽을 상하게 할 뿐 아니라 알코올 분해효소가 채 작용하기도 전에 술이 체내로 흡수돼 간에 큰 부담을 준다. 음주 전 숙취 해소를 돕는 기능성 음료를 마시는 것도 도움이 된다. 기능성 음료에 포함된 글루메가 위 점막을 보호하고 아스파라긴산이 알코올 분해 과정에서 나타나는 아세트알데히드의 독성을 줄여주기 때문이다.
영동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정준표 교수는 "그러나 광고에서 주장하는 효과를 과신하고 과음하면 아무 소용이 없으며, 음주시 적절한 영양섭취와 함께 과음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음주 전에 위를 보호한다며 지방이 많은 기름진 음식을 먹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상식이다. 위벽에 기름기가 있으면 음식물과 뒤섞여 알코올의 분해를 방해하고 간에 지방을 축적해 지방간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천천히 주량에 맞게
즐겁게 대화하면서 천천히 마시는 것이 음주수칙 제1호. 이렇게 하면 뇌 세포로 가는 알코올의 양이 적어진다. 한꺼번에 마시는 폭탄주, 회오리주 등은 혈중 알코올 농도를 급격히 높여 급성 알코올 중독을 유발할 수 있다. 삼성서울병원 가정의학과 이정권 교수는 "한 잔의 위스키나 한 컵의 맥주는 체내에 들어가 1시간이 지나야 분해되기 때문에 한 시간에 한 잔 정도가 가장 적당하다"고 말했다.
평소 담배를 잘 피우지 않는 사람도 술자리에서는 줄담배를 피워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담배 연기 속의 일산화탄소는 알코올 해독에 필요한 간의 산소량을 줄여 간의 부담을 가중시킨다. 간의 손상 여부는 술의 종류가 아니라 섭취한 알코올 양에 의해 좌우된다. 개인차는 있지만 대개 남자는 하루 40g, 여자는 20g 정도가 적당하다. 남자의 경우 맥주 800∼1,000쭬(4∼5잔), 소주 150∼160쭬(3잔), 위스키 90쭬(3잔), 청주 200쭬(4잔), 포도주 240쭬(7잔), 막걸리 600쭬(2사발), 여자는 그 절반 정도로 보면 된다.
■안주는 저지방 고단백으로
안주를 통해 영양분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하면 알코올을 분해하는 간에 무리가 간다. 배가 고프거나 목이 마르면 술을 급하게 마시게 되기 때문에 안주와 물을 충분히 섭취하는 게 좋다. 특히 단백질 섭취가 중요하다. 단백질은 간이 알코올을 해독하는데 필요한 에너지원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동물성 단백질에는 간장이나 알코올 분해효소의 활동을 돕는 '나드'라는 물질이 다량 포함돼 있지만 동물성 단백질만 섭취하면 아미노산의 균형이 깨져 효과가 반감된다. 따라서 식물성 단백질과 동물성 단백질을 적절하게 함유한 찌개가 권할 만하다.
술 안주로는 치즈, 두부, 살코기, 생선 같은 저지방 단백질 식품이 가장 적합하다. 이런 음식들은 위 속에 오래 머물러 알코올의 흡수를 늦추고 공복감과 목마름으로 인해 술잔 비우는 속도가 빨라지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갈증을 증가시켜 술을 더 마시게 하는 짠 안주나 위를 자극하는 매운 안주 등은 피하는 게 좋다.
■간에게 휴식을 주자
가장 나쁜 것은 술을 적정량 이상으로 매일 마시는 것. 보통 알코올이 완전히 분해되는 데에는 맥주 1병은 3시간, 소주 1병은 15시간 정도 걸린다. 그렇지만 간이 기능을 완전히 회복하는데 걸리는 시간까지 감안하면 72시간 정도가 필요하다. 특히 과음한 뒤에는 반드시 간을 쉬게 하는 '휴간일(休肝日)'을 두어야 한다. 한 번 술을 마신 뒤에는 일정을 조정해 최소한 2∼3일은 간을 쉬게 해주어야 한다. 숙취 해소에는 충분한 물과 당분(꿀물, 사과주스, 포도주스, 스포츠음료 등), 콩나물국, 미역국, 북어국, 유자차, 칡차, 인삼차, 생강차, 비타민이 풍부한 과일 등이 좋다.
흔히 숙취를 해소하려고 사우나를 하거나 커피를 마시는데 이는 금물. 지나치게 땀을 흘리는 것은 가뜩이나 부족한 수분과 전해질을 더욱 부족하게 만들고, 커피 역시 순간적인 각성 효과는 있지만 이뇨작용을 일으켜 탈수를 유발할 수 있어 두 잔 이상은 피해야 한다. "해장술이 숙취에는 최고"라고 말하지만 해장술은 몸을 피폐하게 하는 원흉이다. 뇌의 중추신경을 마비시켜 두통이나 속쓰림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건강 음주 10계명
1. 식사를 충분히 한 뒤 술을 마신다.
2. 물이나 음료수를 충분히 마신 뒤 술을 시작한다.
3. 술은 작은 잔으로 마신다.
4. 술은 가득 따르지 말고 반만 따른다.
5. 양주는 얼음이나 물을 타서 마신다.
6. 받은 술잔은 바로 마시지 말고 시간을 두고 마신다.
7. 술잔은 한 번에 비우지 말고 여러 번 나눠 마신다.
8. 술을 섞어 마시지 않는다.
9. 술자리에서 얘기나 노래를 많이 한다.
10.술자리에서는 남을 비판하기보다는 칭찬을 많이 한다.
<자료:영동세브란스병원 정신과>자료:영동세브란스병원>
■2차 노래방서 괴성지르면 "성대폴립" 음성장애 올수도
송년회에서 술과 함께 빠지지 않는 것은 노래다. 그러나 술을 마신 뒤 노래를 부르다 보면 평소보다 소리를 세게 질러 성대에 무리가 가기 쉽다. 또 술로 인해 혈관이 팽창돼 성대가 충혈된다. 이로 인해 급성후두염이나 성대폴립과 같은 음성장애를 부를 수 있다.
성대가 붓고 충혈되는 급성후두염은 말을 삼가고 휴식을 취하면 좋아진다. 뜨거운 물을 많이 마시면 도움이 된다.
문제는 성대폴립. 성대폴립은 갑자기 고성을 지를 때 흔히 발생하는 질환이다. 성대 손상으로 점막이 찢어져 안에 있는 조직이 빠져 나와 생긴다. 급성후두염과 달리 자연치료가 불가능하므로 병원에서 수술을 받아야 한다. 고려대 안암병원 이비인후과 정광윤 교수는 "술과 담배를 많이 하는 사람에게 음성장애가 나타나기 쉽다"며 "노래를 연속해서 계속 부르면 성대에 무리가 갈 수 있는 만큼 목소리가 칼칼해지면 5∼10분 쉬는 게 좋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쉰 목소리가 2∼3일 이상 지나도 회복되지 않으면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권대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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