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대 모험을 결심했다. 직원들과 함께 전개한 '책상에서 잉크병 없애기' 운동 덕분에 모나미153 볼펜의 판매고가 늘어나기 시작했지만 불만족스러웠다. 좀 더 확실한 방법이 필요했다. 불특정 다수의 소비자들에게 모나미153 볼펜을 알려 판매고를 높일 수 있는 방법. 그것은 광고였다. 지금이야 TV가 일반화했지만 당시에는 TV를 가진 가정이 드물었다. 나는 신문, 잡지, 라디오를 통해 대대적인 광고를 하기로 하고 다른 기업에서 일하고 있던 박승직(朴承直·62·현 아미기획 사장)씨를 영입해 광고업무를 맡겼다. 나와 박 사장은 회사에 선전실을 설치하고 광고 전략을 짜기 시작했다.요즘에는 광고를 포함한 마케팅 활동이 기업의 사활을 좌우할 만큼 중요하지만 당시는 마케팅의 개념조차 모르던 때였다. 박 사장을 영입하기 전 회사의 광고 예산은 월 30만원에 불과했다. 우린 머리를 맞댄 끝에 광고 예산을 월 600만원으로 정했다. 농협에 물어보니 당시 80㎏들이쌀 한가마니가 3,730원이었다니까 쌀 1,600여 가마 값이다. 물론 지금 기준으로 보면 별 것 아니지만 그 시절 대기업도 아닌 작은 문구업체가 그런 금액을 쏟아붓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박 사장은 광고에 관한 한 탁월한 감각과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다. 광고 뿐만 아니라 제품 디자인 업무도 그가 맡고 있었는데, 모나미153 볼펜 12자루를 넣는 포장 케이스 디자인도 그가 했다. 종전에는 신문 제호 밑에 들어가는 작은 광고 밖에 하지 않았는데 박 사장이 온 이후 신문 지면 아래 5단 광고를 하기 시작하면서 화제가 된 광고가 많이 나왔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손가락에 볼펜을 끼우고 주판을 튕기는 광고다. 볼펜의 편리함과 실용성을 최대한 강조했던 광고였다. 또 요즘에는 그런 광고를 하지 않지만, 연말연시가 되면 연예인들이 펼치는 각종 공연 안내 광고와 함께 나가는 '협찬 광고'도 위력을 발휘했다. 그밖에 볼펜을 귀에 꽂고 일하는 모습, 와이셔츠 주머니에 볼펜이 가지런히 꼽혀있는 모습 등을 담은 광고 등이 연일 신문 지면을 장식했다.
당시 회사 월 매출액은 1억원에도 훨씬 못미쳤다. 그런데도 우린 인건비, 재료비, 사무실 공장 임대비 등 고정 비용을 제한 나머지 금액 대부분을 광고에 투입하기까지 했다. 일부 직원들은 "이러다 회사 망하는 것 아니냐"며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지만 나는 달랐다. 모나미153 볼펜을 한국의 대표 필기구로 만들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했고, 그러기 위해선 광고 밖에 길이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런 생각을 갖게 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본격적인 광고전에 나서기 1년전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일본의 한 협력업체 사장이 내게 이런 말을 해줬다. "2차 대전때 미군이 오키나와와 유황도를 어떻게 점령한 줄 아시오. B29 폭격기로 쑥대밭을 만든 뒤 지상군을 투입했소. 기업도 마찬가지요. 모나미가 한국에서 독보적인 문구업체로 성장하려면 문구시장을 모나미 제품으로 뒤덮어버리시오. 모나미 아니면 안된다는 인식을 확산시켜야 해요."
난 그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사운을 건 광고 덕분에 모나미153 볼펜의 판매는 급신장하기 시작했다. 판매량이 늘어나는 것만큼 광고량도 증가했다. 당시 식품, 화장품, 약품 광고 등이 광고량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모나미의 광고량은 항상 10위권 안에 들었다. 연말이나 명절 때면 신문사, 잡지사, 방송국 등에서 보낸 선물꾸러미로 사무실이 꽉 찰 정도였으니 모나미의 '광고 폭격'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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