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상하이(上海)에서 세미나가 열려 여기자들이 함께 갔었다. 해마다 가는 사람도 갈 때마다 그 변화에 놀란다는 상하이, 십여년 만에 간 나는 깜짝 놀라 한동안 말이 나오지 않았다. 김정일이 상하이를 보고 '천지개벽'이라고 했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중국이라고 하면 머리에 떠오르는 고색창연함과 약간의 우중충함, 붉은 깃발의 이미지가 상하이에는 거의 없다. 지난 십 여년 간 개발된 푸둥(浦東) 신구는 초현대적인 고층빌딩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푸둥은 세계적인 건축 거장들의 작품 전시장이다. 세계의 어느 도시가 이렇게 아름다울까. 우리 기자들은 지금까지 본 아름다운 도시들을 열거해 보았다. 도시마다 각기 특징이 있지만 상하이는 단연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꼽힐 만했다. 특히 건물조명이 뛰어난 야경은 요술나라처럼 찬란하다.
세계 어느 나라가 십년 안에 이런 도시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중국이 유일한 나라일 것"이라고 우리는 입을 모았다. 서울보다 약간 작은 522㎢의 허허벌판에 지난 10년 간 220억 달러를 투자해 개발한 푸둥은 연평균 20%의 고속성장을 기록하며 상하이의 경제성장을 주도하고 있다. 푸둥의 엄청난 규모는 중국이 또 하나의 '로마제국'으로 가고 있다는 두려움마저 갖게 한다.
한강의 기적을 경험했기 때문에 우리는 중국의 위협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14억 인구가 일어나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라고 뛴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것을 세계에서 가장 잘 아는 사람이 한국인이다. 아직 인구의 3분의 1도 안 일어났는데 중국은 90년 이래 연평균 8% 이상의 고도성장을 지속하면서 세계 6위의 GDP(국내총생산)를 기록하고 있다.
중국에 대한 공포는 초현대적인 공단시설이나 첨단기술에서만 오지 않는다.우리는 세미나를 끝내고 쑤저우(蘇州)공단과 항저우(杭州) 등을 구경하면서 틈틈이 쇼핑을 즐겼는데, 그야말로 중국은 싼 물건의 천국 이었다. 우리가 70∼80년대에 만들어냈던 값싸고 품질 좋은 각종 보세품, 중국의 전통 생활 용품들이 풍부한 음식문화와 함께 관광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했다.
명품 쇼핑과는 거리가 먼 우리 일행은 각자 사 온 물건들을 보고 서로 감탄하면서 계속 가방을 채웠다. 10여년 전 중국에 왔을 때는 등을 긁는 대나무, 가짜 옥과 비취, 우황청심환 정도가 쇼핑 품목이었는데, 이제는 80년대 서울의 이태원을 옮겨 놓은 듯한 다양한 상품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며칠 전 산업자원부가 내놓은 '최근 대중(對中)수출 패턴의 변화'란 자료를 보니 중국에서 품었던 공포가 되살아났다. 중국은 우리의 최대 수출국이고 중국에서 보면 한국이 3번째 수입국이다. 한국의 대 중국 수출은 작년에 48.9억달러, 금년에는 1∼9월에 같은 액수를 달성할 만큼 급신장했다. 그러나 중국시장에서의 경쟁력은 조금씩 떨어지고 있다.
중국의 수입시장이 다변화하면서 일본 미국 한국 싱가포르 등의 시장점유율은 다소 하락하고, 대만 말레이시아는 올라가고 있다. 한국상품의 점유율은 98년 10.7%, 2000년 10.3%, 2002년 1월∼9월 9.4%로 떨어지고 있다.
무선통신기기의 압도적인 신장세와 반도체 브라운관 액정디바이스 폴리에틸렌 등의 경쟁력은 아직 탄탄하다. 그러나 저렴한 인건비, 외국의 투자증가와 기술이전 등으로 중국은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상하이 여행에서 나는 50달러(6만5,000원)정도를 거리 쇼핑에 썼다. 가짜 세계 명품 핸드백들이 5∼10달러, 예쁜 방석 덮개 8장에 10달러, 누비 조끼 8달러…. 내 가방에선 요술 보따리처럼 예쁜 물건들이 끝없이 나온다.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가입은 우리에게 위기이자 기회라고 한다. 중저가 시장에서 이미 경쟁력을 잃은 우리가 첨단기술 제품까지 잠식당한다면 기회는 없고 위기만 올 것이다. 경제기적을 경험한 우리는 그 위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중국의 경제기적에 누구보다 잘 대비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우리는 정말 정신차리고 있나. 상하이에서 보고 온 공단의 활기가, 쇼핑해 온 요술 보따리가 나에게 계속 묻고 있다.
/본사 이사 msch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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