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이 그를 오뚝이로 만든 것일까. 지난해 내내 성적부진으로 '무관의 제왕'이란 오명을 꼬리표처럼 달고 다녔던 '모래판의 황태자' 이태현(26·현대)이 자신의 씨름 고향인 구미에서 2년 만에 천하장사에 다시 오르는 감격을 맛봤다.이태현은 24일 경북 구미 박정희체육관에서 열린 2002 세라젬배 천하장사씨름대회 결정전(5판3선승제)에서 동갑내기 라이벌 백승일(LG)을 3―1로 누르고 천하장사에 올라 우승상금 5,000만원을 거머쥐었다.
이태현은 이로써 2000년 대회이후 2년 만에 천하장사에 복귀했고 1994년 6월대회와 2000년 대회에 이어 통산 3번째 천하장사 타이틀을 차지했다. 또 지난해와 올 상반기 자신을 옥죄던 슬럼프에서 벗어나 제2의 전성기를 선언했다.
이날 결정전은 마치 모래판의 시계를 8년 전으로 돌린 듯 했다. 1994년 9월 천하장사대회 결정전서 두 사람은 악연을 맺었기 때문. 당시 청구씨름단 소속으로 한솥밥을 먹었던 두 사람은 1시간8분 동안 사투를 벌였지만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결국 계체를 통해 이태현이 승리를 거뒀고 이후 17세의 나이로 천하장사에 오르며 소년장사로 이름을 날렸던 백승일은 오랜 방황의 세월을 보냈고, 이태현은 모래판의 간판스타로 떠올랐다.
8년 만에 운명의 재대결을 벌이게 된 두 사람은 결정전서 아무런 표정 없이 서로의 샅바를 잡았다. 첫번째 판 신호가 울리자마자 이태현은 전광석화 같은 밭다리 공격으로 한판을 먼저 땄다. 백승일이 두번째 판서 되치기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지만 이태현은 세번째 판을 기습적인 잡채기로 따내 2―1로 앞서갔다. 승부를 가리지 못한 네번째 판에 이어 열린 운명의 다섯번째 판. 이태현은 저돌적으로 밀고 들어오는 백승일을 감싸 안아 모래판에 쓰러뜨렸고 환호성을 질렀다. 경기 후 이태현은 "씨름을 배워 고향이나 다름없는 구미에서 천하장사에 올라 기쁘다"며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오랫동안 모래판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2002 천하장사대회 순위
천하장사=이태현(현대) 1품=백승일(LG) 2품=황규연(신창) 3품=신봉민(현대) 4품=염원준 5품=김경수(이상 LG) 6품=황규철(신창) 7품=김동욱(현대)
/구미=박천호기자 tot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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