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홍빈 글·주명덕 사진 열화당 발행·1만8,000원600여년 전 조선 도읍으로 건설된 서울은 자연과의 조화를 강조한 계획도시였다. 일제와 고도성장기를 거친 뒤의 서울은 성냥갑 아파트와 고층건물 가득한 개성없는 도시, 역사없는 도시가 됐다.
'서울 에세이'는 미국 하버드대와 MIT에서 도시계획을 공부하고 서울시 행정1부시장으로도 근무한 강홍빈(57) 서울시립대 교수의 서울 도심 감상기이다. 그가 세종로부터 예술의전당에 이르는 지역을 종단하면서 구간마다 펼쳐지는 서울의 도시 풍경을 음미하고 그런 풍경을 낳은 역사와 정치적 힘의 관계를 생각한다.
저자가 세종로에서 발견한 모습은 국가의 두 얼굴이다. 세종로라는 거리 이름, 이순신 장군 동상, 광화문, 복원되는 경복궁은 민족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그 길을 따라 늘어선 정부청사는 획일성, 권위주의, 냉정함이라는 근대성 제일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대한민국은 민족과 근대성으로 정당성과 정통성을 부여받으려 했지만 저자가 발견한 것은 시민 없는 거리, 시민사회의 부재였다.
걸음을 정동으로 옮긴 저자는 강요된 개화를 생각한다. 정동은 조선 내내 도성의 변두리였다. 그러나 1896년 아관파천 때 고종은 정동 러시아 공관으로 거처를 옮긴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공사관, 거기에 이화학당 배재학당 정동제일교회가 가세하면서 정동은 서구식 벽돌건물의 전시장이 됐다. 한국을 지배한 일본은 덕수궁 남쪽 안산을 깎아 탁지부를 세우고 법원을 두었으며 새문안길 연결로를 만들었다. 정동에 남아있는 양풍 건물은 식민통치자의 청사 아니면 그 자본을 위한 금융기관이었다.
저자는 남대문시장과 명동에서 도심의 부침을, 용산 미군기지에서 왜곡된 현대사를 느끼고 한강을 건넌다. 반포에서 그가 떠올린 것은 강남 개발의 역사, 졸부와 거품경제 그리고 정당하지 못한 부의 축적이었다. 서초동 법원, 검찰청 건물의 석조 벽과 대칭적 구조, 높다란 쇠창살은 권위주의의 상징으로 받아들인다.
마지막 여로 예술의전당에서 저자는 다양한 문화예술 기능을 하나의 하드웨어에 담으려는 중앙집중식 발상을 읽어내려간다.
문화의 균점화를 말하면서 서울, 그것도 한 군데에 천문학적 투자를 집중한 것이 옳은 일이었던가 되묻는다. 다원성 자율성 유연성 상대주의가 없다는 점에서 예술의전당이 민주사회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다.
도심 기행을 통해 저자가 주문하는 것은 우리의 뒤틀린 근대화의 궤도를 바로 잡자는 노력이다. 그것은 도시의 주인이 건물과 길이 아니라 시민이라는 점에서, 시민사회의 성숙, 합리성의 회복, 공공영역의 확장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청계천 복원사업, 강북 뉴타운 개발계획, 마곡지구 개발 등 잇따라 터져 나오는 서울시의 계획을 어떻게 보아야할 지 생각하게 만든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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