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플렉스 공급과잉의 신호탄인가. 서울 강북 중심가의 대표적 대형극장인 씨넥스가 '레드 드레곤' 상영을 끝으로 21일 문을 닫은 데 이어 서울의 몇몇 주요 극장이 폐관을 심각하게 고려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무분별하게 늘어난 극장의 '공급 과잉'에 따른 후유증이 벌써 시작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씨넥스 관계자는 "극장으로 쓰는 것보다 다른 용도로 쓰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판단, 폐관케 됐다"고 설명했다. 삼성생명 소유로 에버랜드가 운영해 온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생명 사옥 내의 영화상영관 씨넥스(CINEX)는 삼성영상사업단이 1997년 11월 개관하면서 돌비 디지털, 디티에스(DTS), 에스디디에스(SDDS) 등 다양한 음향 시스템과 최상급의 좌석, 넓은 간격 등 수준 높은 관람 시설로 높은 평가를 받아온 곳.
그러나 빌딩 내 극장이 있어 보안에 문제가 많다는 불만이 있는 데다 멀티플렉스가 늘면서 관람객이 더 줄었다. 삼성생명은 리모델링 공사를 거쳐 이곳을 국제회의장으로 사용할 계획. 결국 부적절한 위치 선정과 소극적 운영 등의 이유로 개관 5년 만에 문을 닫게 됐다. 삼성측의 갑작스런 조치에 대해 네티즌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관객들은 "문화에 대한 대기업의 몰지각한 인식을 상징하는 사례"라며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서울 강남 도산대로에 위치한 씨네하우스도 문을 닫게 될 것이란 소문이 돌고 있다. 90년대 강남의 대표적 멀티플렉스로 인기를 모았던 씨네하우스는 지하철 역과 멀어 일반인의 접근이 쉽지 않은 데다 인근에 메가박스, 주공공이, 씨네씨티 등 멀티플렉스가 잇달아 생겨나며 관객을 빼앗긴 상태. 씨네하우스의 소유주인 메가박스 관계자는 '폐관 후 뮤지컬 전용극장으로 전환할 것'이라는 소문에 대해 "공연장으로 전환하는 것은 백지화됐다"며 "아직 구체적 일정이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내부적으로 극장을 타 용도로 전환하는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명동CGV 개관으로 타격을 입은 코리아극장이 9월 초 폐관한 데 이어 서울 변두리 지역 몇몇 극장도 폐업을 모색하거나, 기존 멀티플렉스와 흡수 합병 방안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더구나 CGV, 메가박스, 롯데 시네마 등 첨단시설을 갖춘 멀티플렉스 체인이 대기업의 막강한 자본력과 유통망을 업고 서울의 변두리와 신도시, 지방 중소도시에까지 세력을 확장하고 있어 기존 극장의 폐업은 더욱 늘어날 전망.
메가박스는 8일 김포에 800석 규모의 극장을 연 데 이어 목포 광주 울산 안산 등에 진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목동 구로에 개관한 CGV 극장도 불광 등 서울 주변 지역 진출을 눈앞에 두고 있다.
플래너스도 서울 신림동에 내년에 멀티플렉스를 개관한다. 여기에다 종로3가의 단성사와 피카디리 극장도 내년이면 대형 멀티플렉스로 탈바꿈해 문을 열 예정이어서 극장 공급과잉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벌써 올해에만 250여개의 스크린이 늘어났고, 이같은 추세라면 2년 후에는 전국 스크린이 1,600개가 되면서 적자운영(평균 객석점유율 30∼40%)으로 문을 닫는 극장이 줄을 이을 것으로 보인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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