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둥 탁탁, 둥둥 탁탁…'18일 오후 6시 경북 울진군 불영계곡에 자리잡은 비구니 사찰 불영사(佛影寺). 저녁 예불 시간을 알리는 법고(法鼓) 소리가 적막한 산사에 나지막이 퍼진다. 목숨을 걸고 화두를 타파해 칠통(漆桶)같은 무명을 반드시 끊어버리고 말겠다는 수행승의 의지가 담겨있기 때문일까. 이날 법고 소리는 한층 더 장엄하게 들린다.
불영사를 비롯해 조계종 산하 전국의 90여 개 선원, 2,000여 명의 수행승이 19일 일제히 동안거에 들어갔다. 앞으로 3개월, 스님들은 '문 없는 마음의 관문(無門關)'을 뚫기 위한 정진을 계속한다.
불영사 안 천축선원(天竺禪院)에도 전국에서 모여든 80여 명의 눈푸른 납자(納者·수행승)들이 빙 둘러앉아 산중회의를 열고 있었다. 동안거 동안 각자 맡아야 할 소임을 정하는 시간이다.
"공양주(음식담당)는 혜안, 법승 스님." 사회를 보는 스님이 소임을 호명하자 "잘 살겠습니다"고 대답한다. 이어 다각(차 담당) 명등·화대(전기·난방 관리) 욕두(목욕탕 관리) 등 한 명도 빠짐없이 소임이 정해지자 용상방(龍像榜·각자의 소임을 적은 방)을 선방 벽에 붙였다. 동안거 결제 준비가 끝났다.
선방은 선불장(選佛場)이라고 불린다. 말 그대로 부처를 뽑는 곳이다. 그래서 불상을 모시지 않고 대신 가사와 포단(불상을 놓는 자리)만 놓는다. 법전(法傳) 종정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여기가 바로 부처를 뽑는 시험장이니 마음을 비워야 급제하여 고향으로 돌아가리라"고 설법하며 용맹정진을 당부했다.
불영사 천축선원은 전국 최대의 비구니 선원. 동안거 기간 천축선원의 비구니 스님들은 방안에서 일체 묵언해야 하고 일주문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생활 속에서 하심(下心)과 인욕을 배운다'는 가풍을 따라 수행자들은 밥도 짓고 마당 청소 등 울력에 동참해야 한다. 저녁 10시 취침, 새벽 2시 기상. 나머지 시간은 참선과 짧은 방선(放禪·휴식 시간)의 반복이다. 방 안에는 이불이 없다. 참선하다 쓰러지면 방석을 이불 삼아 잠깐 눈을 붙일 뿐이다. 불영사 동안거 참가자들은 6개월 전 방부(房付·안거 참가 신청)를 들일 때 큰스님들로부터 무자(無字) 화두, 시심마(이 뭣꼬),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나는 어디서 왔는가) 등 화두를 받았다.
거처인 응향각(凝香閣)으로 옮겨 주지인 일운(一耘·50) 스님이 동안거 참선의 의미를 명쾌하게 설명했다. 그는 "번뇌를 없애는 방편이 바로 화두"라며 "살불살조(殺佛殺祖)의 정신으로 끝없이 의심하면서 화두를 참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1,700여 가지나 있다는 화두가 현대 사회에 걸맞게 변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물음에는 "화두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일운 스님은 청담 스님의 둘째딸인 비구니계의 고승 묘엄 스님(봉녕사 승가대학장)의 제자로 1991년 불영사로 와 95년 현재의 자리에 천축선원을 세웠다.
동안거가 시작된 날, 불영사의 아침은 유난히 맑았다. 사찰 앞에 파놓은 연못인 불영지(佛影池)에 천축산(天竺山) 봉우리에 솟아 있는 부처바위의 형상이 선명하게 비치고 있었다. 선방에 들어앉아 화두를 막 풀어낸 비구니 스님의 정신도 이처럼 명징하게 빛나고 있을 것 같았다.
/불영사(울진)=김영화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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