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사상태에 빠진 코스닥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한 유력한 방안으로 거론되고 있는 기업간 인수·합병(M& A) 움직임이 오히려 움츠러들면서 코스닥의 겨울잠이 길어지고 있다.국내 M&A시장 기반이 빈약한데다 경영 문화 측면에서 기업 매각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여전히 팽배하고, 최근 주가하락으로 주식매수 청구권을 행사하는 주주들이 늘어나 건전한 합병마저 난관에 봉착하고 있다.
경영정보 솔루션 전문기업 더존디지털웨어는 20일 올 초부터 추진했던 확장형 ERP전문기업 뉴소프트기술과의 합병이 또다시 무산됐다고 발표했다. 올들어 2차례 합병시도에 실패한 두 회사는 이에 따라 합병을 사실상 포기하고 업무 제휴를 추진, 경영 협력관계를 계속 유지하기로 했다. 이날 코스닥에서 더존디지털의 주가는 10% 이상 폭락했다.
시너지 효과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 두 회사의 합병이 결국 실패한 것은 합병에 반대하는 더존디지털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규모가 70만4,824주(전체의 16.44%)로 합병 조건인 10%를 넘어섰기 때문. 지난달 임시 주총에서 주식매수 청구권 규모가 전체 더존디지털 발행주식수의 10%(42만8,600주) 이내에서 행사될 때만 뉴소프트기술과의 합병계약서를 승인했던 조건을 넘어선 것이다. 주식매수 청구권 행사 가격이 현 주가보다 높자 투자자들이 너도나도 매수청구권을 행사하는 바람에 뉴소프트기술의 매수청구권 행사비율 역시 20.86%로 높아져 합병 조건인 15%를 넘어섰다.
전문가들은 주주 보호를 위해 마련된 주식매수 청구권제도가 현 주가보다 높은 행사가격 산정방식 문제로 건전한 합병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만큼 투자자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청구권을 일부 제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제3자 배정 유상증자 제한 등의 규제도 그동안 물밑에서 진행돼온 M&A움직임을 어렵게 하고 있다. 코스닥기업을 인수하는 주체가 M& A과정에서 즐겨 쓰는 제3자 유상증자에 대해 1년간 보호예수 규정이 생기면서 인수 대상 기업의 물량 확보가 어려워진데다 최근 주식대금 가장 납입사건이 터진 이후 M&A세력의 실탄역할을 해온 명동 사채시장이 개점 휴업상태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코스닥증권시장에 따르면 올들어 11월까지 최대주주 변경 공시를 낸 기업은 총 140개사로 월 평균 10여건을 넘었으나 11월 들어 5건으로 줄었다. 특히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통한 최대주주 변경은 9월 이후 2건에 그쳤다. 코스닥 관계자는 "구조조정회사(CRC)나 사채업자, 일부 큰손 등이 화의기업이나 법정관리기업 등을 대상으로 유상증자 물량을 받아내는 것이 어려워지면서 M&A세력들이 물밑으로 잠복했다"며 "현재 M&A시장에 매물로 나온 코스닥 기업이 150∼200개를 넘고 있지만 인수할 사람은 거의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기업 인수합병이나 매각도 경영성과로 여기는 미국 등 선진국과는 달리, 경영권을 넘기는 것을 실패로 생각하는 기업 문화도 M&A 활성화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증권연구원 김태형 박사는 "최근 들어 많이 개선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한국 경영자와 오너들의 소유 의식이 강하다"며 "인수합병 활성화를 위해 M& A를 전문으로 하는 '바이아웃(Buy-out) 펀드'를 설립하고 투신운용사 등에만 한정된 M&A펀드 운용 주체를 자유화하는 등 수요기반을 확충해야 한다"고 말했다. 코스닥위원회는 M&A 활성화를 위한 연구용역을 발주, 12월께 구체적인 제도개선 방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김호섭기자 dre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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