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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보졸레 누보에 취한 IMF모범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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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보졸레 누보에 취한 IMF모범생

입력
2002.1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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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자정 전국 곳곳에선 프랑스산 햇포도주 보졸레 누보를 손에 들고 건배하는 사람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코르크 마개가 '펑'하고 열리는 순간을 위해 목청 높여 카운트다운을 하고, 프랑스 영화나 매직쇼를 보면서 먹고 마시는 이벤트가 펼쳐졌다.매년 11월 셋째주 목요일 자정을 통해 전세계에 동시에 판매되는 보졸레 누보 열풍은 올해도 거세게 불고 있다. 대한항공은 보잉747 특별기 4편을 투입, 14∼16일 사이에 보졸레 누보 200톤(20만병)을 국내로 실어 날랐다. 작년 수입량(72톤)에 비하면 3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수많은 인파가 술잔을 부딪치며 환호한 이날은 씁쓸하게도 우리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공식 요청한 지 5년째 되는 날이다. 한국경제는 '위기 극복의 모범생'으로 꼽힐 정도로 급속한 회복을 이뤘지만, 그동안 우리가 부담한 경제·사회적 비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아직도 157조원에 달하는 공적자금과 거대 부실기업이 부담스러운 유산으로 남아있다.

더구나 5년이 지난 지금 우리 경제는 가계부채의 폭증과 이에 따른 개인과 은행의 동반 부실화 우려, 빈부격차 확대, 경상수지 불안 등으로 5년전 위기에 버금가는 암운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

1997년 환란이 기업대출 부실 때문에 발생했다면, 이번엔 가계 빚 때문에 위기가 닥칠 것이라는 경고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5년 전 우리는 수많은 은행과 기업의 처절한 도산을 목격했고, 가족과 이웃은 참담한 실직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5년이 지난 지금 한국 경제는 또 다른 시련에 직면해 있는데, 나라 곳곳에선 외국산 햇포도주 잔치판이 벌어지고 있다.

IMF 구제금융이라는 뼈아픈 과거를 완전히 청산하기도 전에 우리는 5년 전 그날의 고통과 교훈을 너무 빨리 잊어버리고 있는 건 아닌가.

남대희 경제부 기자 dh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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