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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바다 왠지 모를 아련함이 사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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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바다 왠지 모를 아련함이 사르르…

입력
2002.1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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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매워졌다. 매운 바람을 온몸으로 맞을 수 있는 곳, 바다로 간다. 하얀 모래밭과 그 모래밭을 넘실대는 파도, 그리고 파도에 쫓겨 왕복달리기를 하는 아이들의 웃음이 있다. 북새통을 이루는 한여름의 바다와 달리 깔끔하고 아련한 추억을 품게하는 겨울바다를 찾는다.고니떼 노니는 '백조의 호수'

■화진포(강원 고성군)

과거에는 정말 멀었다. 강릉까지 기차를 타고 간 후, 털털거리는 시외버스를 타고 끝없이 북쪽으로 가야 했다. 청량리역에서 꼬박 하루가 걸려 피서철에도 한적했던 곳이다. 하지만 이제 화진포는 승용차로 서울에서 5시간이면 닿는다. 한여름이면 예전의 경포대 못지않게 붐비지만 이맘 때면 고즈넉한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다. 화진포의 바다는 백사장의 길이가 1.7㎞이다. 연인이나 가족끼리 손을 잡고 거닐기에 적당하다. 이 곳의 모래는 조개껍질과 바위가 부서져 만들어졌다. 그래서 파도가 훑고 지나갈 때 '사르르르'하는 소리가 들린다. '택리지'를 지은 조선의 학자 이중환은 이를 '우는 모래(鳴砂)'라고 했다. 수평선도 심심하지 않다. 아름다운 바위섬 금구도가 있기 때문이다. 바다에 거북이가 떠있는 모습의 금구도는 훌륭한 천연 세트이다.

이 곳의 명물인 화진포 호수는 바다의 모래가 물을 막아 생긴 자연호수이다. 둘레가 16㎞이고 넓이는 72만평이다. 동해안의 석호 중 가장 크다. 한 바퀴 도는 데 4시간 넘게 걸린다. 호수 전체는 아니지만 동쪽 사면을 따라 도로가 나 있다. 차로 천천히 돌아보다 마음에 드는 곳에서 내려 걸으면 된다.

화진포에 갈대가 익어갈 즈음이면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온다. 철새이다. 특히 천연기념물 201호인 고니도 이 곳을 찾는다. 화진포의 물은 염분이 섞여 있어 잘 얼지 않는데다 갈대 숲에 먹이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백두대간으로 해가 넘어갈 무렵 잔잔한 호수에서 고니 떼가 노닌다. '백조의 호수'가 따로 없다. 고성군청 (033)680-3352.

윤선도유적거쳐 돌밭해변까지

■보길도(전남 완도군)

보길도는 '고산 윤선도의 섬'이다. 조선의 문필가였던 그가 민중의 삶과 동떨어진 호사를 누렸고, 나라의 불행으로부터 도피하려 했다는 등 비판적 시각도 있지만, 그를 빼놓고는 우리 국문학사가 완성되지 않는다.

보길도는 그의 발자취를 더듬으려는 문화유적답사는 물론 다도해 섬 기행, 여름철 피서지 등으로 너무나 유명해졌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현지인보다 더 많은 외지인이 북적댄다. 5곳의 포구에서 하루 40여 차례 대형 선박이 왕복해도 모자랄 지경이다.

하지만 겨울엔 사람에 치이지 않고 섬의 윤곽과 속살을 뚜렷하게 볼 수 있다. 보길도 여행은 당연히 고산의 유적부터 시작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세연정. 은거하는 선비의 원림 치고는 화려하기 그지없는 세연정은 조경 유적 중에서도 특이한 것으로 꼽힌다. 개울을 보로 막아 연못을 만들었다. 정자는 연못과 잘 생긴 소나무의 호위를 받으며 고즈넉하게 앉아있다. 동백나무가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데 지금도 철모르는 동백이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어부사시사' 등 그의 작품은 대부분 이곳에서 태어났다.

보길도에는 아름다운 해변이 세 개나 있다. 가장 특이한 곳은 예송리해변. 해변은 모래가 아닌 돌밭이다. '깻돌' 또는 '먹자갈'이라고 불린다. 물에서 먼 곳에는 물수재비를 뜨기에 적당한 크기의 납작한 자갈이 깔려있고 파도와 가까워지면서 크기가 작아진다. 모래를 털 일이 없어서 여름에는 편하게 해수욕을 즐길 수 있다.

중리와 통리 해수욕장은 눈이 부시도록 하얀 모래해변이다. 다도해의 맑은 물이 모래빛을 반사하면서 코발트색으로 반짝인다. 통리 해수욕장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보길 저수지가 있다. 지금은 갈대가 빼곡하게 들어차 바람에 흔들린다. 길에 서서 보면 좌우가 묘한 대비를 이룬다. 한쪽은 녹색 파도가 밀려오고 다른 쪽은 갈색 물결이 일렁인다. 보길도의 겨울이 완성되는 곳이다. 보길면사무소 (061)550-5611.

티끌 하나없는 드넓은 갯벌

■구시포 명사십리(전북 고창군)

넓은 갯벌이 특징이다. 진흙 갯벌이 아니라 모래 갯벌이다. 하얀 모래밭에는 티끌 하나 없다. 마치 사막 같다. 메마른 사막이 아니라 물이 흥건하게 배어있는 젖은 사막이다. 구시포 해변은 크게 두 곳으로 나뉜다. 포구가 위치한 길이 약 1㎞의 해수욕장과 일부에 군사시설이 들어있는 길이 약 4㎞의 너른 백사장이다. 너른 백사장은 명사십리로 불린다.

먼저 해수욕장. 양쪽으로 방파제가 들어서 있고 바다에는 가막도라는 바위 섬이 떠있다. 그 사이가 모두 모래밭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모래밭에 있다. '귀족 조개'인 백합(또는 생합)을 잡는 사람들이다. 백합은 깊은 모래에 살지 않는다. 기껏해야 약 10㎝ 정도의 모래 속에서 호흡을 한다. 쟁기처럼 생긴 모래 뒤지는 도구나 호미로 모래를 헤친다. 백합은 크고 무거운 조개. 한 마리 한 마리 찾을 때마다 마치 낚시에서 월척을 낚은 기분이다. 명사십리로 자리를 옮긴다. 북쪽 방파제를 지나면 눈에 들어온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아니 서해안에도 이렇게 너른 해변이…'라며 놀란다. 명사십리 남쪽 끝에 해변으로 들어가는 모랫길이 있다. 차를 몰고 들어간다. 명사십리의 모래밭은 물이 빠지고 나면 단단하게 굳는다. 그래서 차가 다닐 수 있다. 파도를 바라보며 차를 달린다. 차선도 신호등도 제한 속도도 없는 길이다. 마구 속도를 내 본다. 명사십리는 군사시설 때문에 아침 6시부터 저녁 8시까지만 출입할 수 있다. 갯벌에 차를 세우고 있을 때 주의할 점이 있다. 밀물 시기이다. 워낙 폭이 넓기 때문에 차를 세워놓은 곳 뒤에 물이 먼저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바다 쪽만 바라보고 여유를 부리다가는 물에 포위가 된다. 상하면사무소(063)563-0700.

검멀레·산호사해변 '색의 마술'

■우도(제주 북제주군)

우도는 제주의 부속섬 중 가장 큰 섬이지만 덩치가 훨씬 작은 마라도나 추자도 만큼의 유명세를 타지 못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부터 진가를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했고 이제는 연 평균 70만 명이 다녀갈 정도로 제주에서 인기있는 명소가 됐다.

우도에는 섬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이 있다. 그 중에서도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세 곳의 해수욕장이 압권이다. 첫 행선지는 검멀레해변. 검멀레는 '검은 모래'라는 의미이다. 폭이 100m 남짓한 해변은 현무암가루와 산호가루가 반반씩 섞인 좁쌀 크기의 모래로 덮여 있다. 이색적인 풍광이다. 해변의 끝에는 동굴음악제로 유명한 콧구멍굴이 있다. 고래의 집이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썰물이 되면 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벽에 가득한 이끼가 신비감을 자아낸다.

검멀레해변에서 약간 북쪽으로 움직이면 하고수동해변이 나온다. 열대의 정취를 풍기는 이 곳은 음료CF의 단골촬영장소로 많이 알려져 있다. 미숫가루처럼 고운 모래에 서있으면 에머럴드빛 파도가 유혹한다. 우도의 바닷가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은 산호사해변. 모래가 아니라 산호가 부서져 바닷가를 덮었다. 우리나라에는 한 곳 밖에 없다. 밀물이 들어와도 잠기지 않는 부분의 산호사는 모래처럼 곱고, 잠기는 부분은 쌀알 크기이다. 눈이 부시도록 하얀 산호사는 맑은 바닷물과 함께 옥빛, 쪽빛, 남빛으로 색의 마술을 부린다. 우도면사무소 (064)783-0004

/글·사진 권오현기자 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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