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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아우라지/ 연초록 물길따라 희로애락 굽이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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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아우라지/ 연초록 물길따라 희로애락 굽이굽이

입력
2002.1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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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길 물길을 거슬러 올라갔던 뗏목꾼의 풍류, 세상 떠난 님을 하염없이 기다리다 물길에 몸을 던진 여인의 한…. 강원 정선의 아우라지에는 굽이치는 물길만큼의 사연이 있다. 그리고 이야기가 있다.

'아우라지'는 이름 그대로 두 물길이 '아우러지는' 곳으로 한강 발원지인 태백 검룡소에서 흘러온 골지천과 오대산, 황령산을 타고 온 송천이 만나는 물길이다. 이 물길은 영월에서 동강으로, 이후 다시 남한강으로 이름을 바꾸어 강화도까지 총 514㎞를 달린다. 겨울이라 뼈대를 허옇게 드러낸 강바닥에 연초록빛 두 물길이 구불구불 이어지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떼돈번다'는 말이 어디서 나온 줄 아십니까?" 정선군 북평면 여량리 최원희(41)씨가 들려주는 이 지역의 '좋았던 시절' 얘기. '떼돈'은 바로 정선 뗏목꾼들이 벌어들인 돈이다. 군수 월급이 15원 남짓하던 일제시대, 뗏목꾼들은 이 지역 목재를 서울 등지로 실어 나르며 한달 300여원을 벌었다. 하지만 고향에 올 때는 늘 빈털터리였다. 물길 따라 서있던 2,000여개의 주막에서 수천 명의 기녀들이 그네들의 호주머니를 가만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뗏목꾼들의 귀를 홀리기 위해 배운 '정선 아리랑', 그래서 이 노래는 물길을 타고 서울 전역으로 전파되었다고 한다.

아우라지 북서쪽 합수머리에는 단아한 누각과 함께 빈 단상이 있다. 원래 이 자리에는 처녀의 원혼을 기리는 동상이 있었다. 1937년 있었던 실화. 이 마을 박금옥이라는 처녀가 동네 총각과 사랑에 빠져 결혼을 약속했었다. 가난했던 남자는 돈을 벌어오겠다며 떼배를 타고 나갔다가 동강의 굽이치는 여울에 유명을 달리했고, 처녀는 돌아오지 않는 님을 하염없이 기다리다 물길에 몸을 던졌다. 이후 익사사고가 끊이지 않자 혼을 달래기 위해 동상을 세웠는데 올해 태풍 '루사'에 떠내려간 것이다. 동상마저 님을 따라 세상을 버린 것일까.

여량리 사람들과 희로애락을 같이 했던 떼배는 지금은 찾을 수 없다. 대신 20m폭의 물길을 잇는 '섶다리'가 있다. 소나무가지를 얼기설기 엮어 짚단을 얹은 이 다리는 밟으면 서걱서걱 소리가 난다. 반영구적인 다리가 아닌 '겨울용' 교량이다. 날이 따뜻해져 물길이 불어나면 저절로 쓸려내려간다. 다리가 없는 물길에는 수평으로 놓인 줄을 잡고 물을 건너는 '줄배'가 오간다. 무덤덤하게 자연에 순응하는, '감자바위'의 풍모를 읽을 수 있는 구조물이다.

아우라지 물길을 따라 갖가지 사연을 실어 나르는 정겨운 풍물이 있다. 바로 한칸짜리(72석) 꼬마기차 정선선이다. 지금은 태풍으로 구절리에서 정선을 잇는 교각이 끊어져 정선에서 증산까지밖에 운행되지 않지만, 본래 구절리에서 정선을 거쳐 증산까지 100여리 산길, 물길을 도는 통일호 기차다. 본래 여름에는 에어컨 대신 선풍기가 돌아가고, 겨울철에는 난방기가 없어 문틈을 있는 대로 막아야 했던 비둘기호였지만 최근 들어 '업그레이드'된 것이다.

노선은 짧지만 통과하는 터널이 무려 18개. 그만큼 오지의 산자락을 속속들이 꿰고 있는 놈이다. 본래 석탄을 실어 나르던 철도였지만 지금은 관광열차 겸 마을버스 역할을 한다. 읍내 노인정으로 마실을 오는 어르신들, 장날 한움큼씩 산나물을 실어 나르는 아낙네…. 소박하고 정겨운 삶을 싣고 꼬마기차가 달린다. 얼마 안가 철로 곳곳 하얀 눈이 쌓이면 그 사연은 더욱 풍성해지지 않을까.

/정선=글·사진 양은경기자 key@hk.co.kr

● 옥산장 주인 전옥매씨

정선은 '아는만큼 보이는'곳이다. 눈에 띄는 절경이나 기암괴석만 찾으러 다니는 이에게는 좀 밋밋할 수도 있다. 대신 정선의 사연을 이해하면 보는 눈이 달라진다.

여량리 숙박시설인 '옥산장' 주인 전옥매(68)씨는 외지인들에게 '정선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너주게/ 싸릿골 옥동박이 다떨어진다….' 옥산장을 찾은 이들에게 나지막이 불러주는 정선아리랑. 그는 "어릴적 고향이 잊혀지는 것이 안타까워" 3년간 정선문화원서 아리랑을 배웠다고 한다.

"들을수록 쉽고 배울수록 어려운 노래입니다. 네멋, 내멋, 사람마다 다르고 악보도 없지요" 임 그리워 부르는 '애정편', 호된 시어머니와 무관심한 남편을 탓하는 '엮음아리랑'…. 이렇게 아리랑은 나지막한 가락에 갖가지 삶의 애환을 실었다. 전씨 스스로도 눈먼 시어머니를 끝까지 봉양하며, 정선아리랑의 주인공이 될 만한 기구한 삶을 살기도 했다.

옥산장 한켠에는 '돌과 이야기'라는 전시관이 있다. 전씨가 수십 년간 이 지역에서 모은 갖가지 모양의 돌멩이가 저마다 '스토리'를 엮어낸다. 1,2,3,4…. 아라비아숫자가 써 있는 돌멩이에서부터 12간지 열두 개 동물을 각각 담아낸 돌, 그리고 남녀가 사랑을 나누고 아이를 낳고, 늙고, 죽는 모양새까지 전씨의 돌 이야기는 끝이 없다.

듣는 이들은 자연이 빚어낸 희한한 돌 모양새에, 그리고 평범한 돌이지만 기가 막히게 하나의 스토리로 엮어내는 전씨의 말솜씨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감탄한다. "말못하는 돌도 인생의 진리를 깨우치는 스승이 될 수 있습니다. 똑 같은 돌이라도 보는 사람과 장소, 시간에 따라 다른 표정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돌에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옥산장에는 나무껍질을 이어서 만든 굴피집, 이불 없던 시절 깔고, 덮고 하던 멍석 '장석자리' 등 토속적인 정선 생활문화의 흔적도 살아 있다. 그는 "강원도하고도 오지, 전국 관광명소를 다 둘러보고나서야 오는 곳이 정선"이라며 "보잘것없는 이야기나마 내고향 정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양은경기자

● 정선 여행법

수도권에서 정선을 가는 가장 빠른 길은 영동고속도로 진부 IC를 나와 오대천삼거리에서 좌회전하는 방법. 3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하지만 좀더 넉넉한 여정을 생각한다면 겨울바다와 함께 멋진 드라이브를 즐길 수도 있다. 경포대에서 정선으로 가는 35번 국도는 눈꽃이 가장 아름다운 길 중의 하나. 백두대간 능선을 타고 남대천을 거쳐 정선 임계로 들어가는 코스다. 지난 태풍에 길이 끊어져 자동차가 고립되기도 했지만 현재는 모두 회복되어 노선버스도 다니고 있다. 임계에서 42번 국도로 갈아타면 680m의 삽당령 정상을 거쳐 정선에 도착한다. 소요시간은 약 1시간.

정선에서 가장 유명한 먹거리는 '감자옹심이'. 감자를 갈아 물에 담가 가라앉는 하얀 녹말로 빚은 감자떡이다. 전분으로 빚은, 서울근교 '감자떡'의 쫄깃한 맛과는 달리 조금 서걱서걱하지만 고운 알갱이가 그대로 씹히는 토속적인 풍미. 옥산장에서 감자옹심이를 넣은 콧등치기국수, 감자전, 삶은감자가 모두 올라오는 식사를 1끼 5,000원에 팔고 있다. (033)562-0739.

좀더 편하게, 실속있는 여행을 즐기는 방법도 있다. 승우여행사에서 경포대-정선 아우라지를 당일로 다녀오는 상품을 12월부터 판매한다. 단체로 갈 경우 전옥매여사의 '돌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02)720-8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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