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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서민을 위한 문화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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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서민을 위한 문화정책

입력
2002.1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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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수상작가인 귄터 그라스가 쓴 '게걸음으로 가다'라는 소설을 보면 히틀러가 왜 그렇게 인기를 끌었는지 독일인들의 솔직한 심경을 엿볼 수 있다.이 책은 1945년 독일 여객선 빌헬름 구스트로프호가 러시아군 어뢰를 맞아 그 배에 타고 있던 독일인 9,000명이 대부분 몰살한 사건을 소재로 삼았대서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 가해국에서 피해국으로 입장을 바꾸려는 것이냐는 문제를 제기한 화제작이었다. 문제가 된 여객선은 서민들에게 아주 싸게 해외여행을 시켜주기 위한 히틀러 정권의 창안품으로 책의 서두 부분을 보면 당시 서민들에게 해외여행이라는 고급 문화를 향유시켜준 것이 히틀러의 제3제국을 지탱시켜 준 힘이었다는 분석이 가능해진다. 먹고 사는 것이 해결된 다음 서민들이 찾는 것은 문화적인 욕구인데 정책입안자들은 이를 채워주어야 한다는 명제가 이 책의 주제와는 별개로 떠오르게 만든다.

한국 사회도 문화적 욕구가 비등해지는 시점에 이르렀으나 그에 대한 대비책이 전무하다. 이 때문에 교육열을 공교육이 흡수하지 못하고 사교육에 내준 것처럼 문화욕구 역시 개인적인 경제 사정에 따라 달리 향유하는 문화 불평등이 한국사회에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서울에서는 이미 90년대 중반부터 어린이들이 악기 교습에서 나아가 성악교습 발레강좌까지 받는 현상이 나타났지만 서민층 자녀를 위해 이 같은 욕구를 충족시켜줄 공교육이나 무료 문화강좌는 지금까지도 전무하다. 오히려 정보화가 진행되면서 이 같은 빈부 격차는 문화 격차를 더욱 늘리고만 있다. 가령 인터넷에 접속할 수만 있어도 엄청난 문화 강좌에 접속이 되지만 실상 산골 오지는 인터넷 망 자체가 깔리지 않아 차별을 감수해야 한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외국인들을 위한 문화강좌는 있어도 한국인들을 위한 문화강좌는 없다는 현실. 1990년대 들어 세계화를 부르짖으며 한국 문화를 외국인에게 알리기 위한 문화강좌가 생겨났으나 한국인에게 같은 기회를 주는 강좌는 오히려 사라져 버렸다. 93년 상반기에 시작된 국립국악원의 외국인 강좌는 지금까지 외국인 1,000명에게 무료로 국악을 가르쳐왔다. 물론 외국인에게 한국의 전통예술을 이해시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비슷한 강좌가 한국인을 대상으로는 유료이다. 월드컵을 계기로 입소문이 난 '템플 스테이'도 아직까지는 저명한 해외 인사나 외교관을 대상으로 한국 문화를 알리기 위한 행사로 주로 이뤄진다. 주한 미군 가족을 초대해서 한국을 여행시키는 행사는 있어도 한국 사람들에게 한국을 배우게 하는 체계적인 프로그램은 없다. 문화 사대주의가 연상된다.

이제는 우리의 문화정책도 한국 문화를 외국에 어떻게 알릴까보다는 이땅에 발붙이고 사는 이들이 어떻게 문화를 즐기게 할 것이냐에 더 초점이 맞춰져야 하지 않을까. 대통령 후보들의 공소한 문화정책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서 화 숙 문화부장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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