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11월20일 러시아 소설가 레프 톨스토이가 82세로 작고했다. 유럽 문학사에서 19세기는 소설의 시대였다. 그 소설은 프랑스·영국·러시아 세 나라를 중심으로 꽃피었다. 톨스토이는 작품의 양으로나 질로나 그 시기 유럽 문학을 대표할 만한 너더댓사람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노벨문학상이 제정되고도 10년이나 더 산 그가 그 상을 못 받았다는 사실이, 이 상 운영이 공정하지 않았다는 주장의 한 근거로 제기되고 있을 정도다.신문학 초기에 일본을 통해서 러시아 문학의 영향을 크게 받은 한국에서 톨스토이의 성가는 특히 컸다. 세계문학전집이라는 이름의 문학 대중화 마당에서 톨스토이는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하던 작가였다.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부활' 같은 작품을 생략한 세계문학전집은 성립할 수가 없었다.
톨스토이는 수많은 장단편 소설을 쓴 작가였을 뿐만 아니라 에세이를 통해 세상에 직접 발언한 사상가이기도 했다. 그런 사상가 기질은 그의 작품을 웅장하게 만들었지만, 한편으로 지루하게 만들기도 했다.
'전쟁과 평화'(1864∼69)만 해도 그렇다. 영국 소설가 윌리엄 서머셋 몸은 이 작품을 두고 "모든 소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작품임이 분명하다"고 쓴 바 있다. '검의 영웅' 나폴레옹과 '정신의 영웅' 플라톤 카라타예프를 대립시키며 역사의 힘에 놀아나는 개인들의 무력을 등장인물 수백명의 언행을 통해 그린 이 소설은 분명히 고전 중의 고전이다. 그러나 이 소설이 묘사 못지않은 분량의 '논설'로 독자를 짜증나게하는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나폴레옹에 대한 작가의 증오와 멸시는 미적 균형을 해칠 정도다. "하잘것 없는 역사의 도구"였던 나폴레옹은 톨스토이가 보기에 "사내다운 위엄을 한 번도 보인 적 없는 자"였다.
고 종 석/편집위원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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