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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신화](29)날짐승·물짐승·길짐승같은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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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신화](29)날짐승·물짐승·길짐승같은 인간

입력
2002.1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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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먼 변방에 사는 사람들 중에는 아예 반은 사람이고 반은 짐승의 몸을 한 인종도 있었다. 적어도 고대 중국인들은 그렇게 상상했다.가령 남쪽 바다 바깥에 살고 있다는 우민국(羽民國) 사람들을 보자. 이들은 새처럼 알로 태어났고 머리가 길쭉했으며 양 어깨에 날개가 있었다. 날개가 있다는 점에서 서양의 천사를 방불케 했으나 예쁘장한 모습은 아니었다. 그리고 날개는 힘이 없어서 새처럼 멀리 날지도 못했다.

근처에는 이들과 비슷한 인종인 환두국(□頭國)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 역시 날개가 달렸는데 입은 새의 부리 모양이었다. 이들은 날개로 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지팡이 삼아 땅을 짚고 걸어 다녔으며 물고기를 잡아먹고 살았다. 일설에 의하면 요(堯) 임금 때에 환두(□兜)라는 신하가 큰 잘못을 저지르고 스스로 남쪽 바다에 뛰어들어 죽었다 한다. 요 임금이 그를 딱하게 여겨 그의 아들로 하여금 남쪽 바닷가에 가서 살게 하고 그의 제사를 받들게 했는데 후일 그의 자손이 이렇게 변한 것이라고 한다.

또 다른 일설에 의하면 요 임금의 맏아들 단주(丹朱)가 아주 고약했다고 한다. 그는 쫓겨나서 남방에 가서 살았는데 거기서 다시 야만인들과 결탁해 반란을 일으켰다가 패해 죽었다고 한다. 환두국 사람들이 그의 후손이라는 설도 있다. 그러나 실상 이들은 새를 토템으로 숭배하던 변방 민족이었을 것이다. 이들의 기괴한 모습은 그들이 숭배하던 새를 흉내 낸 복장이나 가면이었을 것이다. 새와 동일시된 이들의 모습은 후세에 하늘을 나는 인간으로 상상됐던 신선(神仙)의 원시적인 형태로 추측된다.

남쪽 바다 안쪽에는 반은 사람이고 반은 물고기인 인어 같은 사람들이 살았다. 다름아닌 저인국(셖人國)이라는 나라의 사람들인데 얼굴과 상체가 사람이고 하체는 물고기인 것이 안데르센 동화에 나오는 인어 공주와 꼭 닮았다. 중국에는 지역마다 다른, 여러 종류의 인어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어떤 지방의 인어는 무척 예뻐서 눈 코 입 손과 발이 아름다운 여인네와 같았다. 피부는 백옥처럼 희었는데 술을 조금 마시면 복사꽃처럼 발그레 달아올랐다고 한다. 머리는 치렁치렁 늘어졌으며 키도 훤칠했다. 그래서 바닷가에 혼자 사는 홀아비나 과부들이 이들을 잡아다가 연못에 두고 아내나 남편으로 삼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남쪽 바다에는 교인(鮫人)이라고 부르는 인어들이 살았다. 그들은 베짜기를 잘 하였는데 눈물을 흘리면 진주가 되어 떨어졌다고 한다. 그들은 가끔 물에서 나와 인가에 머물면서 여러 날 동안 옷감을 팔았다. 바다로 돌아갈 즈음에 그들은 여관집 주인에게 소반 한 개를 달라고 하였다. 그리고 울어대면 눈물이 진주가 되어 소반에 가득 찼다. 그들은 그것을 숙박비로 주었다 한다. 교인은 이른바 황금알을 낳는 거위 같은 존재인 셈이다. 인어에 관한 여러 이야기들, 특히 인어를 미인으로 여기는 이야기를 보면 동서양의 상상력이 비슷하다. 그러나 인어가 베를 짜거나 장사를 하러 다닌다는 이야기를 보면 중국이 인어를 보다 일상 생활에 밀접한 존재로 여겼음을 알 수 있다.

길짐승의 모습을 한 인종도 있다. 남쪽 바다 안쪽에는 효양국(梟陽國)이라는 나라가 있는데 이곳 사람들의 생김새는 사람의 얼굴에 입술이 길게 나왔고 몸에 털이 나 있으며 발뒤꿈치가 뒤로 향하였다. 이들은 길을 가다가 사람을 만나면 공연히 씩 웃었다 한다. 생김새로 보아 효양국 사람들은 원숭이 종류가 아닌가 싶다. 고대 중국인들은 원숭이의 일종인 성성(猩猩)이가 말을 할 줄 알고 사람의 이름을 알아내는 지혜를 지녔다고 생각했다. 중국의 서남쪽 변방에는 성성이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그 지역의 골짜기에 성성이가 많이 사는데 다니는 길이 일정치 않고 수백 마리가 떼를 지어 다녔다. 원주민들은 술이나 술지게미 같은 것을 길에다 놓고 또 성성이가 짚신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풀로 짚신을 만들어 수십 켤레를 서로 붙들어 매 놓는다.

성성이는 산골짜기에 있다가 술과 짚신을 발견하면 덫을 놓은 사람과 그의 조상의 이름을 즉시 알아낸다. 그리고 그 이름들을 부르며 "네 놈이 나를 잡으려고 하다니!"하고 욕을 하고는 그냥 두고 가버린다. 잠시 후 다시 돌아와 동료들을 불러 함께 술맛을 보고 이번에는 짚신을 신어본다. 술을 두세 되쯤 마시게 되면 크게 취한다. 이 때 사람들이 뛰어나와 잡는데 성성이들은 짚신이 서로 연결되어 도망도 못 가고 잡혀서 우리에 넣어진다. 나중에 성성이를 우리에서 끌어낼 때 주인이 우리 앞에서 말하기를 "성성아, 너희들 스스로 살찐 놈을 한 마리 밖으로 밀어내는 것이 좋겠구나"라고 하면 성성이들이 서로 마주 보면서 끝내 울기만 했다고 한다. 가엾은 성성이, 영리하긴 하지만 성성이는 역시 짐승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일찍이 '예기(禮記)'는 "성성이는 말을 할 줄 알지만 짐승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썼다.

다시 북쪽 바다 안쪽에는 견봉국(犬封國) 혹은 견융국(犬戎國)이라고 부르는 나라가 있는데 이곳 사람들은 머리는 개인데 몸은 사람이었다. 늑대인간인 셈이다. 일설에 의하면 이들은 황제(黃帝)의 후손 농명(弄明)이 낳은 흰 개 한 쌍이 퍼뜨린 자손이라고도 하고 고신씨(高辛氏)의 충견 반호(盤瓠)의 후손이라고도 한다. 반호가 공을 세워 공주와 결혼해 먼 변방으로 가서 살았다는 이야기는 앞에서 이미 하였다. 이 나라에는 희한한 말이 있었다. 외팔이인 기굉국(奇肱國) 사람들이 타고 다니는 무늬가 아름다운, 게다가 타고 다니면 천살 까지 산다는 문마(文馬)가 바로 이 나라의 산물이었다. 남쪽 바다 바깥에는 또한 염화국(厭火國)이라는 불을 뿜는 인종이 사는 나라도 있었다. 이들은 짐승의 몸에 검은 털빛의 모습이었고 입에서 불을 뿜어댔다. 이들은 이글거리는 숯불을 집어삼키는 재주도 있었다.

변방에는 모습은 지극히 정상적이지만 생활이나 풍습이 특이한 인종들도 살았다. 먼저 결혼 풍습이 남다른 경우를 보기로 하자. 동쪽의 먼 황야에 위치한 사유국(司幽國) 사람들은 결혼을 하지 않고도 종족을 번식시켰다. 대신(大神) 제준(帝俊)의 손자 사유(司幽)에게는 사사(思士)라는 아들과 사녀(思女)라는 딸이 있었는데 이들은 각기 장가를 들지도, 시집을 가지도 않았다 한다. 사유국은 이들의 후손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후손이 생겼을까? 이 나라 사람들은 남녀가 서로 좋아하면 짝을 짓지 않아도 느낌만으로 기운이 통하여 아이를 낳았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기장밥을 먹고 짐승을 잡아 먹으며 호랑이와 곰 등의 짐승을 부릴 줄 알았다고 한다. 서쪽 바다 바깥에는 온통 남자들만 사는 장부국(丈夫國)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이곳에는 의관을 단정히 갖추고 칼을 찬 남자들만 득씨글 했다. 이 기묘한 나라가 생기게 된 연유는 이렇다. 은(殷) 나라의 왕 태무(太戊)가 왕맹(王孟)이라는 신하를 시켜 불사약을 구해오게 하였는데 서왕모(西王母)를 찾아다니다가 이곳에 이르게 되었다. 그런데 양식이 떨어져 나무 열매를 먹고 나무껍질로 옷을 해입으며 혼자 살다가 홀연 겨드랑이로 두 아들을 낳았다. 두 아들이 나오자마자 아버지는 죽었고 이들이 다시 후손을 퍼뜨려 장부국을 이룩한 것이었다. 남자들만 사는 나라가 있다면 당연히 여자들만 사는 나라도 있을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장부국 근처에는 여자국이 있었다. 이곳에는 황지(黃池)라는 연못이 있는데 여인들이 들어가 목욕을 하고 나오면 바로 임신을 하였다 한다. 그러나 사내애의 경우 세 살만 되면 저절로 죽어서 결국 여자만 남게 되었다고 한다. 동방의 아마존, 여자국은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

우리나라가 동쪽 끝에 위치해 있어서 인지 고대 중국인들은 우리나라 근처에 기이한 종족들이 많이 살고 있다고 상상했던 것 같다. '위지(魏志)' 동이전(東夷傳)은 동해 바다의 한 섬에 온통 여자만 있는 나라가 있다는 옥저(沃沮)의 한 노인의 증언을 기록하고 있다. 그 나라에는 신령스러운 우물이 있어서 여인들이 들여다보기만 해도 애를 낳았다 한다. 그러니까 남자 없이도 여자만의 나라를 이룩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에서 연못 우물 등의 이미지는 중요하다. 신화에서 물은 생식력을 상징하기 때문에 여자국의 여인들은 남성의 도움 없이 물의 힘만으로도 임신할 수 있는 것으로 이야기된다. 남성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난 여성들, 우리는 장부국과는 다른 문맥에서 여자국의 존재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고대 사회에서 억압된 여성들의 일탈하고픈 소망의 표현은 아니었을까?

글 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교수

그림 서용선 서울대 서양화과교수

■ 동양의 인어

때로 인어는 중국의 사신이 우리나라로 오는 황해 바다의 뱃길에서 발견되기도 하였다. 송(宋) 나라 때에 사도(査道)라는 사람이 고려에 사신으로 오는 길에 저녁 무렵 한 섬에 정박하였는데 멀리 모래밭 위에 한 여인이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붉은 치마를 걸쳤고 머리엔 단정히 쪽을 졌는데 팔에 붉은 지느러미 같은 것이 있었다고 한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 의하면 진시황(秦始皇)의 무덤 안에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촛불이 켜져 있는데 그것은 인어의 기름으로 만든 초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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