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미술사에서 1970년대 중반 이후 한 시대를 풍미했던 모노크롬(단색화) 회화의 미의식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국립현대미술관이 21일부터 내년 2월 2일까지 여는 '사유와 감성의 시대' 전이다. 45명 작가의 작품 140여 점이 나온다."한국 작가들의 단색화는 애초부터 물질성을 떠난 '내재적 모노크롬'이다. 현대 서구미술에서 단색주의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그들에게 색채가 물질화한 공간을 의미한다면, 우리에게 는 정신적 공간을 의미한다." 작고한 미술평론가 이일은 한국적 모노크롬의 의미를 이렇게 규정했다. 모노크롬이 70년대 세계 미술계의 주류 양식이었던 개념미술과 미니멀리즘의 반향이기도 했지만, 무채색 특히 백색을 중심으로 전개된 한국의 모노크롬은 한국 고유 정서로의 환원이자 그 조형화로 평가된다.
프랑스에 체류하고 있던 김기진이 72년 흑색 모노톤의 작품들로 국내전을 연 이후, 75년 일본 도쿄화랑에서 열린 권영우 박서보 서승원 등의 '다섯 개의 흰색전', 77년 도쿄 센트럴미술관에서 이우환 곽인식 김창열 박장년 이강소 등 19명의 작품전으로 열린 '한국 현대미술 단면전'은 정신적 금욕주의적 모노크롬으로 한국 현대미술의 독자성을 국제 화단에 뚜렷하게 각인시킨 계기가 됐다. 일체의 형상과 이미지를 제거함으로써 화면의 평면적 특성을 부각시켰던 모노크롬 미술가들에게 화폭은 물질적 세계 너머의 무한으로 통하는 공간이었고, 반복적인 선 긋기 등 제작의 기법은 무위의 경지로 나아가려는 행위였다. 동양의 전통적 노장사상이 그 근저에 있었다.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97년부터 장기 기획전으로 계속해온 '근대를 보는 눈' '한국 현대미술의 전개' 시리즈를 마감하는 것이기도 하다. 크게 다섯 가지 경향으로 출품작들을 나눠볼 수 있다.
'손의 여행'으로 불리는 반복적 그리기로 평면에 대한 새로운 지각을 보여주는 박서보와 하동철 등이 첫번째. 영롱한 물방울로 명상적 분위기를 드러내 화면과 형상의 일체화를 꾀한 김창열과 곽인식 박장년 이강소 등이 두번째다. 바둑판 같은 작은 단면을 설정하고 이를 부분적으로 떼어내기도 하고 다시 색칠하기도 해 요철의 미묘한 변화를 시도한, 화면의 물성화를 추구한 작가들에는 정상화 윤명로 최창홍 등이 속한다. 단색의 반복적 칠과 그 지우기 작업으로 질료에서 물질성을 걷어내는 시도를 한 김기린, 전통재료인 한지를 사용해 한국화에 추상 형식을 도입했던 권영우와 하종현이 각각 또 다른 경향의 대표적 작가들이다. 전시기간 중 매주 화 목 토 일요일 오후 2시, 3시에는 관람객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작품 설명회가 열린다. (02)2188―6000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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