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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모나미 인행 송삼석 (4)볼펜을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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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모나미 인행 송삼석 (4)볼펜을 만들다

입력
2002.1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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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볼펜사로부터 볼펜 팁과 볼을 수입하는 조건으로 볼펜 제조 기술을 지원받게 돼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움이 남는 출장이었다. 내겐 반드시 100% 우리 기술로 순수 국산 볼펜을 만들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그런 야심이 있었기에 유성잉크 제조기술을 지원받는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 것이다.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순수 국산 볼펜 양산을 위한 대강의 계획을 머리 속에 세우기 시작했다.얼마 뒤 오토볼펜의 마쓰모토(松本) 전무는 약속대로 볼펜용 유성잉크 제조 기술자 한 명을 보내줬다. 그때부터 나와 생산부장, 연구과장은 마치다(町田)라는 일본인 기술자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 한 달에 불과한 짧은 체류기간 동안 그에게서 최대한 많은 노하우를 얻어내기 위해 묻고 또 물었다. 하지만 그는 유성잉크 외에 볼펜과 관련된 내용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역시 일본인이었다.

처음에는 "유성잉크 제조기술이라고해봐야 별 것 아니겠지"라고 가볍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성분 배합이 조금만 잘못돼도 잉크는 볼펜의 플라스틱 관 밖으로 역류해 버리고 만다. 또 30도가 넘는 무더운 여름이나 영하의 겨울 날씨에 상관없이 일정한 양이 볼펜 팁과 볼을 통해 흘러야 한다. 그런 조건에 딱 맞는 유성잉크를 만들어내는 데는 고도의 성분 배합 기술이 필요했다.

모나미153 볼펜을 처음 생산, 판매했을 때 잉크 때문에 웃지 못할 일도 많이 겪었다. 우린 볼펜 주문·판매량에 맞춰 유성잉크 생산량을 조절했다. 그 과정에서 간혹 성분 배합이 잘못된 불량 잉크가 생기기도 했고, 그런 잉크가 투입된 볼펜이 말썽을 일으켰다. 요즘엔 다양한 색상의 와이셔츠를 입고 다니지만 당시에는 흰 와이셔츠 일색이었다. 직장인이나 대학생들이 볼펜을 와이셔츠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 잉크가 새는 바람에 흰 와이셔츠를 못입게 되는 피해가 왕왕 발생했다.

우린 그런 고객들이 회사로 찾아오면 즉시 와이셔츠 값을 변상해줬다. 모나미가 와이셔츠 값을 변상해준다는 소문이 나자 무리한 요구를 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와이셔츠 주머니에 볼펜을 넣고 다니다 잉크가 새 와이셔츠를 버린 것까진 좋은데 그 잉크가 양복 안감에 묻었다며 양복 값까지 내놓으라고 떼를 쓰는 경우가 있었다. 눈에 띄지도 않는 양복 안쪽에, 그것도 약간 묻었을 뿐인데 그것을 변상하라니….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불량품을 만든 것은 전적으로 우리 책임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난 항상 '불량품 제로'를 강조했다. 불량품을 만들지도 않고 팔지도 않는 것, 그것은 기업인이 갖춰야 할 기본 덕목이요, 도리이다.

당시 우리 회사는 업계에서는 드물게 연구실을 운영하고 있었다. 문구류의 완전 국산화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모나미 물감, 왕자 파스를 생산할 때부터 운영해 오던 것이다. 연구실에는 서울대 물리학과와 한양대 화학과 출신을 포함해 5명의 연구원이 일하고 있었다. 그들은 유성잉크 제조기술을 익히는 데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유성잉크 시제품을 만들다 실패하고 다시 만들어 보길 수백, 수천 차례 반복하면서 그들의 손은 까맣게 변해갔다. 회사 야전침대에서 새우잠을 자며 기술개발에 몰두한 그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모나미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마치다씨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오토볼펜에서 2주일 동안 현장실습을 한 연구과장이 돌아온 뒤에도 실패는 계속됐다. 그러길 수개월. 1963년 5월1일 마침내 우린 직접 제작한 유성잉크를 넣은 볼펜을 생산하는데 성공했다. 비록 지금처럼 매끈하고 멋진 모양은 아니었지만 녀석은 내겐 세상 그 무엇보다 아름답고 사랑스런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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