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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33)낙엽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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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33)낙엽을 바라보며

입력
2002.1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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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첫 눈이 왔다고 말하고 싶진 않지만 그래도 비슷한 것이 왔더군요. 차가운 바람이 일고 그 바람을 따라 낙엽이 몰려다닙니다. 뺨에 찬 기운을 느끼며 그 길을 오래도록 걷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매번 바라보고만 지나는 것을 보면 저도 별 수 없이 구속된 생활인이구나 싶더군요.낙엽은 나무들이 겨울을 준비하면서 하는 일 중의 하나입니다. 무성하던 잎이 말라 다 떨어지고 가지를 고스란히 드러내기 시작하는 겨울나무들을 두고 나무의 제 모습을 가장 제대로 보여 주는 때라고 의미있게 말하기도 하지만, 나무로서는 아주 쓸쓸한 선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때가 되면 가지에 달린 잎자루 부분에 떨켜라는 코르크 같은 특수한 조직이 생겨 잎을 나무로부터 떨어뜨립니다. 연한 잎이 해를 입을 수 있고 물과 양분이 오가던 연약한 통로를 통해 동해(冬害)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일찌감치 보호막을 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수분의 증발이나 해로운 미생물의 침입도 막을 수 있지요.

계수나무 같은 나무는 떨켜를 만들어 낙엽이 질 때 솜사탕처럼 달콤한 향기를 내어놓아 쓸쓸한 마음을 덜어주기도 합니다. 제가 일하는 광릉 숲에는 큰 계수나무가 많답니다. 내년 가을에는 꼭 한번 그 길을 걸으며 색으로, 향기로 겨울을 만나는 호사를 한번 누려보십시오.

참나무 종류들은 대부분 겨울이 오고 있어도 떨켜를 만들지 않아 지금도 마르고 찢긴 채 잎이 달려있습니다. 이 집안 나무들은 본래 고향이 남쪽이어서 떨켜를 만들어 잎을 떨어뜨려야 하는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혹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가 바로 이런 나무의 종류는 아니었을까요?

소나무와 같은 상록수들은 어떤가요. 잎이 지지 않고 영원히 푸를까요? 물론 아닙니다. 나무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소나무의 경우 한 3년쯤 달려 있습니다. 겨울을 시작하며 낙엽이 지기도 하지만 새잎이 오는 봄에 묵은 잎들을 모두 떨구느라 낙엽이 지기도 하지요. 이런 경우 낙엽은 겨울준비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낙엽은 나무의 상태가 좋지 않으면 일찍 시작됩니다. 나무의 건강을 측정하는 지표가 되는 것이죠. 오염이 심한 곳의 소나무를 보면 2∼3년 된 가지에는 잎이 달려 있지 않습니다. 마르기 전에 주워 온 감나무 잎 하나가 식탁 유리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잠시 계절이 머물다 가는 듯 합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사 ymlee99@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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