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4,000억원 대북지원 의혹 규명의 열쇠를 쥐고 있는 김충식(金忠植) 전 현대상선 사장이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산업은행 대출을 완강히 거부했으며, 당시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 회장은 그룹생존을 위해 필요하다며 이상한 뭉칫돈을 자주 요구했다"고 밝혔다. 김 전 사장은 신병치료를 위해 9월초부터 미국에 체류중이다.김 전 사장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산은 대출이 김 전 사장을 배제한 채, 정몽헌 회장의 지시에 의해 가신그룹 주도로 이뤄졌으며 그 용도도 현대상선 운전자금이 아니라 정 회장의 필요에 의해 대북지원이나 계열사 지원용으로 쓰였음을 사실상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산은 고위관계자는 "김 전 사장도 4,000억원 대출을 받기 위해 공을 들였고, 대출계약서에는 친필서명이 들어있다"고 반박했고, 현대상선도 "김충식 사장이 15일 이 같은 발언을 한 적이 없다고 연락해왔다"고 발표, 논란이 되고 있다.
■산은대출, 누가 주도했나
김 전 사장은 "4,000억원을 이유없이 대출받으려는 것을 대표이사로서 완강히 거부했다"며 "서류에 자필사인이 없고 직인만 찍혀 있는 것이 내 의사와 상관없이 이뤄졌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이 자주 거액을 요구했다"며 "이를 거부하다 사표를 내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이익치(李益治) 전 현대증권 회장도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4,000억원 대출은 나도 모르는 일이고, 정 회장만이 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밝힌 바 있다. 두 사람의 얘기를 종합하면 4,000억원은 결국 정 회장이 공식라인을 배제한 채, 가신그룹을 동원해 대출을 받은 것으로 정 회장의 해명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정 회장은 지난달초 미국에서 "대출에 관여한 적이 없으며, 대출사실은 나중에 실무자로부터 보고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산은측은 "김 전 사장이 처음에 4,000억원 대출을 반대한 것은 분명하지만 이후 입장을 바꿔 산은측에 적극 대출을 요청해왔고, 대출 신청서류에 없다뿐이지 계약서에는 친필서명이 있다"며 김 전 사장의 주장을 반박했다.
■4,000억원 어디에 쓰여졌나
김 전 사장은 4,000억원이 현대상선에 들어오지 않았고, 정 회장의 필요에 의해 사용됐음을 강하게 시사했다. 김 전 사장은 4,000억원이 북한으로 갔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즉답을 피하면서도 "정 회장이 그룹 생존차원에서 필요하다며 이상한 뭉칫돈을 자주 요구했다"고 말해 타용도로 전용됐음을 암시했다.
타용도란 대북지원용보다 내부 유동성위기 해소에 쓰였을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이 경우 현대상선 운전자금으로 사용됐다는 현대상선의 공식 해명은 거짓이 되는 셈이다. 정 회장은 이와 관련, "4,000억원은 현대상선의 심각한 재정난을 해소하는 데 전액 사용됐다. 대북지원에는 사용하지 않았으며 계열사 지분매입과도 무관하다"고 해명한 바 있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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