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택 글·신혜원 그림 푸른숲 발행·8,500원일년 내내 흙 한번 밟지 않고 사는 도시 아이들은 벼가 어떻게 생겼는지, 쌀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 길이 없다. 그래서 어른들은 "요즘 아이들은 벼를 쌀나무라고 부른다"며 우려 섞인 말을 자주 하곤 한다. 초등학교 교사인 '섬진강 시인' 김용택(54)씨도 논의 물꼬가 뭔지 모르는 아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논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 쓴 책이 '나는 둥그배미야'다.
저자는 아이들에게 오랜 세월 우리 식생활의 근본이 되어준 쌀에 관한 이야기, 노동의 터전이자 놀이마당이었던 논에 관한 이야기를 차근차근 들려준다. '둥그배미'라는 논이 화자가 되어 한 해 동안 자신의 몸 위에서 벌어지는 농사의 진행과정을 친근하게 들려준다는 얼개다. 배미는 논을 세거나 부를 때 쓰는 우리말. 운동장처럼 둥그스름하게 생긴 논이라고 해서 '둥그배미'라는 이름을 붙였다.
"내 몸에는 복잡하게 많은 이름이 없어. 그냥 간단하게 둘로 나누어 부르면 그만이지. 내 몸에는 물꼬와 논두렁이 있어. 어때? 내 몸은 참 간단하지?" 책은 주인공 둥그배미에 대한 소개로 시작해 계절에 따라 둥그배미가 겪는 변화를 따라간다. 언 땅이 녹고, 보리의 파란 싹이 돋아나면 사람들은 보리를 밟으러 둥그배미에 들어간다. 얼었다가 녹은 땅이 떠 있어서 보리 뿌리가 땅 밖으로 하얗게 나와 있기 때문이다. 보리가 자라는 동안, 농부들은 둥그배미의 한 귀퉁이에 못자리를 만든다. 보리베기와 모심기가 이뤄진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면 둥그배미에 있던 다 자란 벼들은 싹둑싹둑 베이고, 빈 논으로 누워있는 둥그배미를 농부들은 다시 갈아 엎는다.
논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중요한 소재다. 형제간에도 못말린다는 물싸움, 가뭄과 홍수에 애태우는 농부의 애환, 낮밤으로 노심초사 논 생각만 하는 농부의 마음을 묘사해 아이들에게 먹거리의 소중함, 농부들이 흘린 땀의 고마움을 일러준다. 모닥불을 피워놓고 보리 이삭을 구워먹는 보리 서리, 모내기철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 동네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새참을 먹는 모습 등도 농촌의 빼놓을 수 없는 풍경이다.
이야기와 함께 눈길을 끄는 것은 신혜원(38)씨의 그림이다. 책의 배경이 된 전북 임실군 섬진강변 진메마을을 꼬박 2년간 답사했다는 신씨는 원근법을 포기하고 대신 민화적 기법을 사용해 꼬물꼬물한 논과 들, 강과 마을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그림을 그렸다. 정겨운 농촌 풍경과 인물의 묘사는 김용택씨 글의 소박한 서정성과 좋은 조화를 이루고 있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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