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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伊 100년만에 화해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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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伊 100년만에 화해악수

입력
2002.1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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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황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이탈리아 의회에서 연설을 하면서 한세기를 이어온 바티칸과 이탈리아간 갈등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는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양원 의원을 포함, 800여명에 이르는 청중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으면서 의회에 도착한 교황은 "열렬한 환영을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교황청과 이탈리아 사이의 유대는 진실로 깊은 것"이라는 화해의 메시지로 연설을 시작했다.

교황은 이어 미국이 주도하는 이라크 전쟁을 겨냥해 "이탈리아를 비롯해 그리스도교 신앙에 뿌리를 둔 다른 나라들도 어떤 해결책도 주지 못하는 대결 논리에 스스로 갇히지 않도록 해야 한다"면서 평화적 해결을 촉구했다.

교황은 이탈리아 내부 문제와 관련해서는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을 극복하기 위해 더 많은 아이를 가질 것과 대사면의 관용을 보여줄 것을 주문했다.

교황청과 이탈리아가 등을 돌린 것은 100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세기 중반 이탈리아 통일로 세속권력을 완전히 상실한 교황청의 역대 교황들은 통일 이탈리아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를 '바티칸의 포로'로 부르며 비타협적인 자세를 줄곧 견지해 왔다.

교황의 의회연설에 대해 이탈리아 언론들은 "이른바 '포르타 피아의 위약'을 극복하는 상징성을 갖는다" 고 대서특필했다.

'포르타 피아의 위약'이란 1870년 이탈리아 통일 당시 비토리아 에마누엘레 2세 왕의 군대가 약속을 깨고 로마를 점령한 뒤 포르타 피아에서 로마를 수도로 선언하고 로마에 대한 교황의 세속적 지배권을 종식시킨 사건을 말한다. 당시 이탈리아 정부는 바티칸 시티 내의 교황의 독립권을 인정하고 영토상실에 대한 보상방안을 제시했으나 피우스 9세 교황은 통일정부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을 '바티칸의 포로'로 지칭하면서 세속권력의 상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꽁꽁 얼어붙어 있던 양측 관계는 요한 바오로 2세가 외국인 출신으로는 455년 만에 교황에 오르면서 해빙의 기운을 보이기 시작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지난달 로마 명예시민증을 받은 데 이어 이번 의회연설을 통해 양측이 갈등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데 큰 역할을 맡게 됐다.

/김병주기자 b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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