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은행원들은 신분도 불안하고, 정년도 짧아졌는데 이만큼 장수하고 떠나게 되니 기쁩니다."14일 임기를 마치고 은행연합회장직에서 물러난 류시열(柳時烈·64·사진) 전 회장은 은퇴의 소회(所懷)를 이렇게 밝혔다. 1961년 대학(서울대 법대) 졸업과 함께 한국은행에 들어가 은행원으로서 외길을 걸어온 지 어언 40여년. 한국은행 자금부 과장과 비서실장, 외환관리부장, 이사, 부총재, 제일은행장 등을 거쳐 연합회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국내 은행산업은 그야말로 '상전벽해'의 대격변을 겪었다. 류 전 회장은 "멀리 볼 것도 없이 불과 외환위기 전까지만 해도 은행원 하면 공공서비스나 하는 '적산(敵産) 관리인'쯤으로 여겨졌다"며 "이제는 은행도 이익을 내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돈 장사하는 회사'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낀다" 고 말했다. 그는 "예전엔 예금만 많이 끌어오면 1등 은행원이었지만 이젠 은행마다 돈이 넘쳐 나면서 얼마나 대출을 많이 해주느냐, 빌린 돈을 계속 쓰게 하느냐가 현안이 됐다"며 "금융의 풍토 자체가 바뀐 만큼 고객이나 은행 모두 은행 서비스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97년 제일은행장 재임시절 한보·기아 등 대기업의 연쇄부도를 맞았을 때가 개인적으론 가장 힘든 경험이었다는 그는 "국가경제를 위해서도 기업 구조조정은 상시적으로 이뤄져야 하지만 많은 채권은행들이 자사이기주의에 빠져 구조조정의 책임을 남한테만 떠넘기려고 한다"고 꼬집었다.
류 전 회장은 '일시 휴직'인지 '은퇴'인지를 묻는 질문에는 즉답을 피했다. 그는 "은행일을 하면서 안 가본 나라가 없지만 대부문 업무 출장이어서 '구경'을 한 적은 한번도 없다"며 "여유시간이 많아졌으니 당분간 부부동반으로 진짜 구경하는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변형섭기자 hispe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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