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최고 영화제'라는 수식이 어색하지 않은 제7회 부산국제영화제(Piff)가14일 오후 7시 부산시민회관에서 개막해 10일간의 화려한 영화축제에 들어갔다. 역대 최다 초청작
(57개국 226편)을 자랑하는 이번 영화제는 마니아를 위한 영상축제를 넘어 부산프로모션플랜 (PPP)을 통해 아시아 영화제작의 허브로서의 한국의 위상을 과시하고 있다. 배우 안성기 방은진의 사회로 열린 개막식장 1,800여석은 세계 각국 게스트와 시민들로 만원을 이뤘고, 베를린과 베니스영화제에서 주목받은 김기덕 감독의 '해안선' 이 개막작으로 상영됐다.
"한반도의 긴장은 여전하며 그 왜곡된 상황이 또 다시 얼마나 작위적이고 비극적인 상황을 초래하는 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영화가 무겁게 느껴질 수 있다. 재미있는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생각치 않는다. 바다가 수비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드러내고 싶었다."
개막작 '해안선'의 김기덕 감독은 분단이 여전히 우리의 일상을 왜곡하는 중요한 아이러니의 하나라고 밝혔다. 5년간 해병대 레이더 기지에서 복무했던 감독은 "레이더 기지의 근처에 있던 해안부대의 기억을 떠올려 영화를 만들었다"며 "그러나 가급적이면 존재하지 않은 특수부대로 그리려고 애썼다"고 덧붙였다. 애초 해안경비부대는 해병대로 그려질 예정이었으나 군의 강력한 반발로 해병대를 떠올리는 어떤 상징도 영화에는 쓰이지 않았다. "물론 싸울 수도 있었다. 그러나 수 십년씩 안보를 위해 애쓰는 사람들에 대해 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설정을 바꿨다. 요즘 부대에서는 쓰지 않는 M16 소총이나 80년대식 복장을 쓴 것도 바로 그런 이유다."
김 감독은 "군대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군에서 사회에서의 모든 것을 보상 받으려는 영웅심리에 젖은 사람과 대강 임무만 마치고 돌아가겠다는 사람. 장동건이 전자이고, 김정학은 후자이다. 그들의 치열한 갈등이 빚는 마찰을 통해 젊은이들을 비극으로 몰고 가는 상황을 그려내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5,000만원을 받고 영화에 나온 장동건에 대해 "차마 사인을 해달라는 말은 안 했지만, 스타이기 때문에 아직도 떨린다"고 농담을 던진 그는 "초기작 '연풍연가' 나 '패자부활전'을 보며 그 안에 숨어있는 악마성을 꺼내 보이고 싶었는데 '이 영화로 장동건이 손해보지는 않겠다'는 누군가의 말이 꽤 위안이 된다"고 말했다.
"감독이 영화에서 끈질기게 '반여성적' 설정을 해오고 있는게 아니냐"는 비판성 질문에 그는 "그러나 내 영화를 보고 자위행위를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충격적 반론으로 인터뷰를 마쳤다.
● "해안선"은 어떤 영화
바다나 해안선은 대부분 아름다운 추억과 맞물려온 단어이다. 그러나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의 해안선은 그 쓰임이 다르다. 바다는 추억이 아니라 '철통 같은 경비의 대상'이다. 김기덕 감독의 '해안선'은 이 땅에 생채기를 안겨주는 바다를 배경으로 인간 본성과 집단 광기를 보여준다.
해안경비대인 박쥐부대의 강한철 상병(장동건)은 간첩을 잡고야 말겠다는 일념을 불태우는 소위 '고문관'. 그는 술에 취해 해안에서 정사를 벌이던 영길을 간첩으로 오인해 사살하고는 포상휴가를 받는다. 사건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애인을 잃은 미영(박지아)은 미친 채 부대주위를 맴돌고, 정신장애로 의병제대 한 강 상병은 역시 부대 주위에 다시 나타난다.
해안부대는 오직 적에 대한 경계가 임무로 주어진 집단이지만, 그런 대의명분 외에 또 다른 인간의 욕망이 분출하는 곳이다. 전우이면서 동시에 수컷으로서의 경쟁심과 야망이 들끓는 곳. 미친 강 상병은 이제 "전우가 아니라 적"이 되고, 강 상병의 동기인 김 상병(김정학)의 또 다른 복수전이 가세하면서, 박쥐부대는 적과 동지의 개념이 흔들리는 광적인 공간으로 바뀐다.
집단의 이념에 희생된 한 개인의 광기를 보여주는 스토리가 다소 단선적이고, 미영과 강 상병의 '광기' 역시 꽤 도식적인 데 반해 마지막 해안부대가 집단 광기에 휩싸이는 부분은 자뭇 깊이 있어 보인다. 집단과 개인의 이해와 욕망이 상충하는 모습이 부대원의 집단갈등과 아이러니를 통해 복잡미묘하게 전개되기 때문이다. 민간인을 죽인 후 바들바들 떨기 시작해 서서히 미쳐 가는 강 상병을 스타 장동건은 꽤 설득력 있는 연기로 보여준다.
강제 낙태 후 피로 물든 수조에 들어앉은 미영의 모습을 빼고는 감독의 전작들에 비해 영상도 비교적 점잖다. 그러나 여성과 관련, 유독 잔혹한 영상을 보여온 감독에 대한 논란은 이번에도 적잖을 것으로 보인다.
/부산=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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