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내 일부 구청이 전임 구청장이 벌여 놓은 무책임한 전시성 사업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다. 이미 상당히 진행된 이들 사업은 이제 와서 중단하기도 어려운 형편이어서 신임구청장의 구정 운영에 커다란 부담을 주고 있다.
양천구 목1동의 초고층 주상복합건물 현대 하이페리온1. 당초 지상 6층, 지하 2층 규모로 건축허가가 났지만 전임 구청장 시절 수 차례의 설계변경을 거쳐 54·64층 아파트 2개동, 59층 오피스텔 1개동, 지상8층 백화점이 들어서는 맘모스 타운이 됐다. 과거 같으면 이 같은 거대 건물의 건축은 지역 발전의 상징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양천구로서는 마냥 달갑지만은 않은 일이다. 교통영향 평가 등 충분한 사전 검토가 없었기 때문에 앞으로 심각한 교통난을 초래할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구는 하이페리온 입주가 시작되는 내년 6월이 되면 이 지역 교통량이 99년보다 1.5배, 특히 하이페리온 북쪽 도로는 7배나 증가할 것으로 추산했다.
추재엽(秋在燁) 양천구청장은 "곧 닥칠 교통난을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다"며 "대책도 없이 이런 초고층 건물이 어떻게 들어설 수 있는 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서대문구의 자연사박물관도 사업성이 없는 것으로 판명되며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1999년 착공한 박물관 건물은 지상3층, 지하1층 규모로 총230억원이 들어갔다. 구는 지난달 이 박물관을 개관할 예정이었는데 아무리 따져봐도 수익이 떨어지는 데다 연 10억여원의 운영비도 부담스러워 최근 개관을 연기, 전면적인 궤도수정에 들어갔다.
현동훈(玄東勳) 서대문구청장은 "일반 자연사박물관으로는 적자운영이 불가피해 아이들의 교육과 놀이를 겸하는 개념의 공간으로 전환할 생각"이라며 "(전임 구청장이) 지자체 가운데 처음 시도하는 사업이라는 데 들떠 정밀한 분석없이 사업결정을 내린 것 같다"고 말했다.
도봉구청이 99년 5억여원을 출자해 설립한 주식회사 '도봉'도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다. 구의 재정수입증대를 위해 만든 이 회사는 당초 구상과 달리 사업추진이 원활하지 못해 부실기업이 됐다. 이 회사가 추진하려던 장례식장사업은 민원에 부딪혀 시작도 못했고, 양돈사업은 운영미숙으로 실패했다. 현재 학교 급식사업만 맡아 벌이고 있는 상태로 지난 3년 동안 이익은 전혀 못 내고 막대한 행정력만 낭비한 셈이 됐다. 결국 부실기업 정리작업은 신임구청장의 몫이 됐다. 구청의 한 관계자는 "주인없는 회사가 민간회사와 경쟁해 이길 수 있겠느냐"며 "행정기관이 민간수익사업에 뛰어든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이라고 비판했다.
경실련 지방자치위원회 김용철부장은 "자치단체장이 다음선거를 의식해 무리한 사업을 벌이는 경우가 많다"며 "의회와 정책평가단 등 견제장치를 활성화하고 주민투표제 등을 도입해 전시·선심성 행정을 사전에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국기자 dkkim@hk.co.kr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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