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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646)헤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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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646)헤겔

입력
2002.1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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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1년 11월14일 철학자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이 콜레라로 작고했다. 61세였다. 철학도가 아니라면 헤겔의 책을 직접 읽는 사람은 드물겠지만, 헤겔이라는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채 중등 교육을 마치기도 힘들 것이다. 논리학·자연철학·정신철학의 세 영역을 정(正)·반(反)·합(合)의 변증법으로 꿰어낸 그의 방대한 철학체계(엔치클로페디)는 유럽 정신사의 가장 높은 봉우리 가운데 하나다. 헤겔 이후, 위대한 철학 정신들은 헤겔을 옹호하든 부정하든 그 이름에 자신들을 조회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프리드리히 니체나 질 들뢰즈 같은 반(反)헤겔리언들도 헤겔이라는 돗자리를 미리 깔아놓고서야 자신들의 생각을 도드라지게 만들 수 있었다.두 세기 뒤의 기준으로 보면 우익 관념론자가 분명한 헤겔은 그 사유의 넓이와 깊이를 통해 잡다한 스펙트럼의 이념적 후예들을 생산했다. 헤겔 학파는 그 비조(鼻祖)의 사후, 헤겔 철학과 기독교의 관련에 대한 해석을 두고 헤겔 우파(노인 헤겔파), 헤겔 중앙파, 헤겔 좌파(청년 헤겔파)로 분열되었다. 다비트 프리드리히 슈트라우스, 브루노 바우어, 아르놀트 루게, 루드비히 포이어바흐 같은 청년 헤겔파 철학자들은 헤겔 철학의 비(非)기독교적 측면을 강조하며 급진적인 종교 비판, 사회 비판으로 나아갔다. 특히 유물론의 입장에 서서 격렬하게 기독교를 비판한 포이어바흐는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헤겔의 관념론을 뒤집어 변증법적 유물론을 창안하는 데 작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헤겔의 명성은 생전에도 화려했다. 그가 재직하던 베를린 대학은 오직 헤겔이라는 이름 때문에 유럽 철학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를 질투한 아르투어 쇼펜하우어가 자기 개에게 헤겔이라는 이름을 붙인 뒤 학대했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다.

고 종 석/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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